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서당’. 18세기 조선시대 그림으로 크기는 26.9x22.2cm.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무동’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
레프 톨스토이는 그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행·불행의 여부는 차치하고,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희로애락은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하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수확의 기쁨은 다소간 고된 몸도 힘을 내게 하고, 흥미진진한 씨름판은 좌중의 눈을 끌어모으며, 신명 난 무동의 춤사위는 보는 사람까지 어깻짓 하게 만든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 한 편에 150여 명 등장인물을 집어넣어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사회상을 거울처럼 투영해 추앙받는 것 못지않은,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년 이후)의 풍속도 화첩이다. 보물 제527호로 지정된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은 25점의 그림에 젖먹이 아기부터 글 배우는 아이들, 젊은 아낙과 힘센 장정, 서민과 양반을 모두 쓸어 담았다. 그림 소재도 농업·상업·어업 등 노동부터 휴식까지, 서민의 놀이와 선비들의 취미·일탈 등 다양하다.
화첩의 첫 그림은 그 유명한 ‘서당’이다. 스승께 혼났는지 돌아앉아 눈물 훔치는 학생 얼굴에 서러운 기색이 역력하건만 둘러앉은 급우들은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고 이를 바라보는 훈장의 표정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요즘 같았으면 ‘왕따 문제’를 제기했으려나. 정작 서당 안은 익살과 정감이 넘친다. 생략된 배경이 주는 여유, 담백한 무명옷 질감 같은 투박한 필치, 눈매 동그랗고 얼굴 넓적한 사람들과 둥근 구도가 풍기는 포근함 덕분이다.
‘천상의 목소리’ 조수미나 ‘가왕’ 조용필도 가끔은 힘 빼고 노래하는 날이 있을 터. 털 세운 호랑이가 그림을 찢고 나올 듯한 생생한 묘사력을 가진 김홍도지만 이 풍속화들을 그릴 때는 힘과 공(工)을 빼고 가벼운 필치로 쓱쓱 그린 모양이다. 하나같이 배경은 없고 구도는 단순하다.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주류 학설인데, 어쨌거나 한눈에 쓱 보고 오래 기억하기에 더없이 좋다.
한 쌍의 소가 쟁기를 끌고 두 명의 농부가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는 ‘논갈이’와 활 쏘는 법을 유심히 배우는 ‘활쏘기’에 이어 그림은 ‘씨름’으로 넘어간다. 맞붙은 두 씨름꾼을 중심으로 아래위로 구경꾼 무리가 둥글둥글 배치된 원형구도다. 절묘한 ‘신의 한 수’는 왼쪽에 선 엿장수다. 모두가 주목하는 씨름판에서 등 돌린 그는 관중을 바라보고 있으나, 정작 사람들에게 그는 안중에도 없다. 그림 오른쪽에 씨름꾼들이 벗어둔 신발짝 4개와 이 엿장수는 소외됐다는 점에서 대칭을 이룬다.
지게 진 장사꾼과 아이 업은 채 광주리 인 아낙을 그린 ‘행상’ 다음은 화첩 안에서 가장 신명나는 그림인 ‘무동(舞童)’이다. 힘의 강약이 살아있는 필선이 춤추는 아이에게 생기를 입혔고, 초록의 옷이 가세했다. 둘러앉은 연주자들의 시선을 따라 북과 대금, 장구와 해금이 주거니 받거니 소리를 맞춘다.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기와이기’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벼타작’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밑에서 던진 기와를 맨손으로 받아 지붕을 만드는 ‘기와이기’에서는 한쪽 눈을 감고 기둥의 쏠림을 점검하는 사람과 대패질하는 목수가, 달군 쇠를 내리쳐 연장 만드는 과정이 모두 담긴 ‘대장간’에서는 풀무에 바람 넣느라 정신없는 나이 어린 견습생이 주변 인물이지만 해학성을 끌어올린다.
한 아이는 업고 더 작은 아이는 안고서 길을 가는 부부 곁으로 나귀 탄 양반의 모습을 그린 ‘노상파안(路上破顔)’에서는 선비의 시선이 재밌다. 부채로 얼굴을 가렸지만 아이 안은 여인을 훔쳐보는 눈빛을 들키고 말았다. 길에서 여인이 승려에게 ‘시주’하는 그림은 한동안 ‘점괘’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짐보따리 가득 실은 ‘나룻배’나 급하게 요기하고 자리를 뜨는 ‘주막’의 풍경은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의 단면을 보여준다.
집채만한 지게를 내려놓고 한숨 돌리게 하는 ‘고누놀이’, 재잘거리는 아낙들과 이를 훔쳐보는 선비를 그린 ‘빨래터’도 해학적이다. 더워 털 난 가슴팍까지 풀어헤친 남정네에게 고개 돌린 채 물을 내주는 젊은 여인과 이 모습을 보고 그윽하게 웃는 중년 부인, 멀리서 혀를 끌끌 차는 할머니가 한 화면에 뒤섞인 ‘우물가’는 곱씹어 웃음 짓게 한다.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노상파안’(일명 ‘나들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의 마지막 그림인 ‘장터길’. 다른 24점이 세로 28cm, 가로 23cm 내외지만 이 그림은 두 폭 합친 크기로 세로 28cm, 가로 49.4cm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외에도 ‘담배썰기’ ‘자리짜기’ ‘벼타작’ ‘길쌈’ ‘편자박기’ ‘고기잡이’ 등은 풍속화인 동시에 조선 시대 생업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화이다. 중간에 낀 19번째 그림 ‘심관(審觀)’은 종이 한 장을 가운데 두고 둘러선 선비들이 ‘그림 감상’하는 장면이라는 해석이 많지만, 망건 쓴 유생들이 과거시험 후 머리 맞대고 답안지를 보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어 화첩은 신부 집으로 향하는 신랑 행렬을 그린 ‘신행길’과 땀 흐르게 일한 후 시장을 달래는 ‘점심’으로 이어지며, 풍속도첩의 대장정은 다른 그림 두 폭 합친 크기로 널찍하게 그려진 ‘장터길’로 마무리된다. 저만치 앞서 가는 소나 가운데 따라붙은 말 등짝이 텅 빈 것으로 보아 장에서 물건을 다 팔고 돌아가는 길인 성 싶다. 장사가 잘 된 덕인지 그림도 경쾌하다.
1918년 조한준(趙漢俊)이라는 사람에게서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된 이 화첩에는 풍속화 외에 신선 그림도 붙어 있었으나 1957년에 ‘군선도(群仙圖)’ 2점은 별도 족자로 분리됐고, 따로 꾸민 풍속도 화첩만 1970년 보물로 지정됐다. 미술사가 오주석은 이 신선도를 두고 “풍속첩 그림처럼 살아가는 이 땅의 사농공상 모든 백성들의 삶에 행복이 찾아들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그려졌을 것”이라고 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