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생물자원 주권시대

페루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사카잉키는 오메가3와 지방산이 풍부해 ‘기적의 열매’로 불린다. 예로부터 사카잉키 열매에서 나오는 식물성 오일로 피부를 관리해온 이들도 바로 페루의 아사닌카족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원료 업체인 코그니스가 사카잉키를 마스크팩으로 활용하겠다며 아사닌카족의 허락도 받지 않고 특허 출원에 나서 외교 마찰을 빚기도 했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2010년 세계 각국에 조류독감이 퍼지면서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 덕택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사실 타미플루는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시스가 중국 토착식물이자 향신료로 널리 쓰이던 팔각회향에서 추출해 로슈에 특허권을 넘긴 것이었다. 원산지인 중국은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한 반면 의약품 개발사만 이익을 챙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최근 동식물과 미생물 등 다양한 생물자원이 의약품이나 화장품에 많이 쓰이면서 선진국 기업과 원산지 국가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산업화와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생물자원의 다양성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도 걱정거리다. 해마다 2만5,000~5만종의 생물 종이 멸종되고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생물자원을 많이 보유한 나라일수록 개발이익을 나눠 가져야 한다며 ‘생물 주권(主權)’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후디아는 남아프리카의 산 부족이 사용하는 전통 약초로 사냥할 때 공복과 갈증 해소용으로 많이 사용돼왔다. 남아프리카정부는 후디아의 효능물질인 P57(식욕물질효소)에 대해 국제특허를 획득해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비만 치료제 개발에 따른 기술료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인도 카니족은 자생식물인 아로기아파차에서 추출한 피로회복 성분으로 특허를 따내 제약사인 AVP로부터 짭짤한 로열티를 거둬들이고 있다.

생물자원의 국제적 이용 절차와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하는 나고야의정서가 국내에서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간다. 국내 산업계는 중국과 중남미 등 해외 생물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로열티 지출에 따른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우리 고유의 생물자원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자원전쟁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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