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이 26일 LPGA 투어 아칸소 챔피언십 시상식에서 대회 관계자들의 축하 속에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로저스=AP연합뉴스
유소연(27·메디힐)의 올 초 세계랭킹은 9위였다. 세계 1위를 목표로 하는 선수라기보다는 우선 우승 가뭄을 씻는 게 급해 보였다. 유소연은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준우승 두 번 포함, 톱5에 6차례 들었지만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난 2015년은 더 심했다. 준우승 두 번 등 톱5에 9차례나 진입하고도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통산 9승에 2011년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 우승자이니 기량은 검증됐는데 이상하게 기량만큼 우승이 터지지는 않는 선수로 평가됐다.
그러나 유소연은 시즌 2승을 달성하며 세계 3위에서 단숨에 1위로 뛰어올랐다. 이로써 유소연은 한국인으로 세 번째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라는 새 역사를 썼다. 세계랭킹 1위의 금자탑에 2010년 신지애, 2013년 박인비에 이어 ‘2017년 유소연’이 아로새겨졌다.
유소연은 26일(한국시간)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의 피너클CC(파71·6,331야드)에서 끝난 LPGA 투어 아칸소 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에서 최종합계 18언더파 195타의 대회 최소타 기록으로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 이날 3라운드에서는 버디 3개와 보기 1개의 2언더파에 그쳤지만 전날의 10언더파 61타 코스 레코드가 워낙 컸다. 5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유소연은 공동 2위인 양희영과 모리야 쭈타누깐(태국)을 2타 차로 따돌렸다. 11번홀(파3)에서 이번 대회 들어 유일한 보기를 범한 사이 양희영이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유소연은 2타 차로 쫓겼다. 그러나 12번홀(파4)에서 바로 버디로 일어선 사이 양희영이 연속 보기를 적어 유소연은 다시 5타 차로 달아났고 그대로 승리를 굳혔다. 12번홀 두 번째 샷은 그린 앞 스프링클러 2개를 절묘하게 피해서 굴러간 뒤 홀 1m 남짓한 거리에 딱 붙었다. 13번홀(파4)에서는 그린 주변 벙커 샷이 조금 짧았지만 까다로운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2014년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LPGA 투어 통산 3승을 올린 뒤 4승까지는 2년7개월여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4승에서 5승까지는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유소연은 15개 대회에서 우승자가 모두 다른 대혼전의 올 시즌 LPGA 무대에서 가장 먼저 2승 고지를 밟았고 시즌 상금 100만달러도 첫 번째로 돌파했다. 121만2,820달러로 상금 선두를 탈환한 그는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도 렉시 톰프슨에 앞선 1위를 달리고 있다.
2006년 도입된 세계랭킹에서 생애 처음 1위에 오른 유소연은 이번주 시즌 두 번째 메이저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롱런’ 가능성을 확인한다. 최근 2년간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세계랭킹에서 유소연은 랭킹 포인트 8.83점, 2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8.58점, 3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7.93점을 기록 중이다. 톰프슨은 4위(7.74점)다. 유소연은 “이번주 세계 1위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그리지 못했다. 좋은 것이 한꺼번에 와서 얼떨떨하다”고 감격해 하며 “세계 1위가 굉장한 압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잘 견뎌내 보겠다.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ANA 우승 때도 물론 기뻤지만 톰프슨 선수와의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유소연이 진정한 우승을 한 것이 맞는가’ ‘우승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얘기들이 있었다. 꼭 우승을 더 많이 해서 저 스스로 그런 해프닝 없이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도 털어놓았다.
LPGA 투어 첫 우승 뒤 6년 만에 넘버원 자리를 차지한 원동력은 역시 ‘꾸준함’이다. 유소연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한 번도 톱10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2014년 10월 레인우드 클래식부터는 무려 64개 대회 연속 컷 통과를 이뤘다. 이달 초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2년8개월 만에 컷 탈락을 경험했지만 2주 휴식 뒤 나온 첫 대회에서 바로 우승까지 내달렸다. 올 시즌 그린 적중률 1위(79.7%)의 아이언 샷이 최고 효자다. 꾸준함의 비결에 대해 유소연은 “매 순간 더 좋아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결과는 신께 맡긴다”고 했다. 바이올린·피아노·필라테스·발레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것도 필드에서 늘 새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메이저 전초전에서 우승한 그는 “마지막 날 흔들렸던 퍼트(33개)를 보완해 메이저 2연승에 도전하겠다. 그랜드슬래머(5대 메이저 석권)라는 꿈도 좀 더 명확하게 꾸게 됐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앞둔 휴식 기간 유소연은 스윙코치인 캐머런 매코믹을 찾아가 스윙 점검을 받았다고 한다. 매코믹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강자 조던 스피스(미국)의 코치로도 유명한 인물. 이날 스피스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매코믹은 겹경사를 맞았다.
한국 선수들은 이날로 올 시즌 16개 대회에서 절반인 8승을 합작하는 초강세를 이어갔다. 양희영은 14번홀(파5) 두 번째 샷을 왼쪽 워터해저드에 빠뜨려 보기를 적으면서 우승에서 멀어졌지만 이번주 메이저대회의 우승후보 자격은 증명했다. 박인비도 12언더파 공동 6위로 선방했다. 리디아 고는 8언더파 공동 25위로 마쳤고 휴식을 택한 에리야 쭈타누깐은 이 사이 2주 만에 세계 1위에서 내려갔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