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북구의 한 빌라로 이사한 김선주(45)씨는 1층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하고 있다. 김씨가 사는 빌라 주민들은 물론 주변 이웃까지 김씨 집 발코니에 쓰레기 봉투를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김씨는 “오후에 우연히 쓰레기 봉투를 버리는 할머니를 목격해 항의했더니 오히려 ‘여기서 30년 넘게 살면서 모두가 그렇게 버렸는데 이제 와서 왜 이러냐’는 질책만 받았다”며 “거주자협의회도 마땅히 없고 주변 이웃도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라 혼자 속만 타들어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핵가족 시대에 어찌 보면 혈연보다 더 가까울 수 있는 이웃사촌이 사소한 이기주의 탓에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웃이 서로 돕고 보듬는 지역공동체로 발전하려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하지만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 비(非)매너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이웃사(死)촌’으로 바뀌는 것이다.
서울시 이웃갈등분쟁센터가 지난해 하반기에 접수한 민원 666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민원 가운데 소음이 246건(36.9%)으로 가장 많았고 누수(15.5%), 흡연·매연·악취(9%), 시설(8%), 동물(5.9%), 주차(5.4%) 등이 뒤를 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서로가 조금만 배려하고 이해하면 충분히 갈등을 피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무심하거나 나만 생각하는 탓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소규모 공동주택 느는데
법규제·중재기구는 없어
이웃간 반목 점점 심해져
빌라 등 공동주택에서 복도 청소나 엘리베이터 운영비 분담은 이런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빌라에 거주하는 박모씨는 “당번을 정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계단과 복도 청소를 하기로 했지만 한두 집이 이를 어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결국 건물 출구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도 누구 하나 치울 생각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5층짜리 빌라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만 몇 년째 사용하지 않고 있다. 1·2층에 사는 주민들이 엘리베이터 비용을 한 푼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주민들 간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웃갈등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존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이 해를 거듭할수록 노화되면서 배관 누수, 엘리베이터 수리 등 이웃 간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잦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법 규제를 적용 받지 않는 30가구 미만의 소규모 빌라가 최근 ‘우후죽순’ 생기고 있어 일조권 침해, 주차공간 부족 등 각종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만 빌라 2만4,952동이 새로 지어졌다. 지난해에는 다세대·연립주택 9,945동이 세워져 10만1,899가구가 수용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들어 건물 노후화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웃 간에 반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웃 갈등은 확산되고 있지만 중재기구는 사실상 전무해 사소한 감정 갈등이 인명 피해로까지 이어지는 폐해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