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들이 28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학부모는 새 정부 교육공약 흔들기를 중단하라”면서 자사고·외고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교육청은 지난 2015년 운영성과에서 미흡한 결과를 받아 ‘지정취소 유예’ 조치를 받은 장훈고·경문고·세화여고(이상 자사고)와 서울외고에 대한 재평가에서 지정취소 기준 점수(60점)를 웃돌아 재지정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취소 우려가 높았던 영훈국제중도 기준 점수를 넘어 재지정됐다. 이에 따라 이들 5개교는 각각 외고(특수목적고)와 자사고·국제중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조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재평가 기간만큼 고교체제 개혁의 교육철학적 방향과 행정가로서의 합리성 사이의 긴장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다”며 “취임 이후 끊임없이 고교체제의 수직적 서열화를 극복하고자 경주해온 제게 이번 재평가는 마치 일종의 시험대와 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지정) 평가를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로의 전환’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입장을 선언적으로 밝힌다”고 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조 교육감이 자사고·외고 폐지 방침에 따라 이번 재평가에서도 일률적으로 기준 미달 점수를 부여해 재지정을 취소하려 했지만 인위적인 취소처분은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했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외고 폐지는 중앙정부가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며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하나는 자사고·외고의 일반고로의 일괄 전환 방식으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해당 학교와 관련한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한꺼번에 일반고로 전환하는 ‘일괄전환’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시행령에 정책일몰제를 도입해 5년 주기 평가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전환하는 ‘순차 전환’ 방식이다.
고입 전형과 관련해서도 일반고와 특목고·자사고 등의 신입생 선발을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고교 간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전기(특목고·자사고·특성화고)와 후기(일반고)로 나뉜 고입 전형을 1단계(특성화고), 2단계(특목고·자사고·일반고), 3단계(미선발 인원 충원)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자사고·외고 폐지 및 고입전형 동시 실시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교육공약이기도 하다. 조 교육감은 과도한 사교육비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국제중학교도 일반중학교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휘국 광주교육감과 최교진 세종교육감 등 다른 지역 진보 교육감들도 이날 “자사고·외고로 인해 일반고가 황폐화됐다”며 조 교육감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자사고·외고 폐지를 통해 고교서열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대학이 서열화된 상황에서 고교 간 서열화는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외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계층구조가 서울 강남 일반고-서울 비강남 일반고-지방 일반고로 대체되는 ‘풍선효과’만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재철 교총 대변인은 “대학 서열화 폐지 없이는 고교서열화도 사라지지 않는다”며 “자사고·외고 폐지는 강남 8학군의 부활과 비강남 일반고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교육감들은 국립대 네트워크 등 대학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서울대 폐지, 대학입학정원제 폐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 및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및 고교학점제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사고·외고의 일방적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외고 재지정 결정이 나자 교육계에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교육감들이 표만 의식하면서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교총은 “서울시 교육감의 섣부른 폐지 발언은 교육 구성원들의 첨예한 대립과 학교 현장의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서울시교육청이 특권학교 학부모들의 눈치를 살피며 일반학교 정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모든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17개 시도 교육감은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에 겉으로는 찬성하나 자기 지역 개혁에 대해서는 미온적 입장”이라며 “각종 정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 교육감들에 대해서는 합법적 낙선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