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만 하더라도 공정률 30%에 이르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존폐를 ‘시민 배심원’의 손에 맡기는 것은 후유증이 우려된다. 새 정부가 탈핵·탈원전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백지 상태라면 모를까 탈원전이라는 큰 방향을 정해놓고 공론화 과정을 밟겠다는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비전문가인 시민 배심원이 3개월 만에 에너지 정책 전반을 이해하고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단 여론전이 시작되면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신고리 원전은 주민들의 유치과정 등을 거쳐 적법하게 추진돼왔다. 이를 무시하고 1조6,000억원이 투입된 공사를 중단한다는 것은 초법적인 조치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사드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부는 지난 정부 때 배치된 사드와 관련해 국방부의 보고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법령에 따른 적정한 환경평가를 진행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 주민들을 참여시키겠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사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사실상 사드 배치를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원전과 사드 같은 사안을 여론몰이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수십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해야 할 주요 정책을 전문성 없는 인사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말이 안 된다. 정부는 이번 사안이 지지자들을 달래는 차원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사라는 점을 명심하고 신중하게 추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