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있는 ‘탑샵(Topshop)’은 유럽 내 손꼽히는 패션쇼핑 명소다. 젊은 층을 겨냥해 게스·캘빈클라인·타미힐피거 등 굵직한 패션 업계 주자들이 입점해 있다. 탑샵에서 벌어지는 브랜드 간 경쟁은 유럽 쇼핑산업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인식될 정도다.
이 치열한 글로벌 브랜드의 경쟁판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한국인 디자이너 정예슬(26·사진) 오아이오아이 대표다. 한국 패션 브랜드 ‘오아이오아이’는 온라인 쇼핑몰의 인기를 힘입어 지난해 탑샵 입점에 성공했다.
스물두살이었던 정 대표는 지난 2011년 달랑 100만원으로 창업했다. 집이 사장실이자 생산라인이었다. 소박했지만 온라인 쇼핑몰로 조금씩 고객을 늘리며 ‘디자이너 정예슬’의 이름을 글로벌 시장에 알렸다.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무려 20만명에 달한다.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 대표는 “대입을 앞두고 자동차에 빠져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유년기부터 꿈꿔온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잊을 수 없었다”며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자는 욕심이 생겨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창업 계기를 밝혔다.
오아이오아이 상품의 인기 비결은 ‘자유로움’에 있다. 캐주얼이나 오피스룩 등 특정 패션분야에 속하지 않는다. 정 대표는 시즌 별로 구상한 테마를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한다. 올해 여름 테마는 ‘본 보야지(BON VOYAGE)’로, ‘꿈에 그리던 휴양지에 초대 받은 소녀’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옷에 담았다.
패션 테마는 계속해서 변하지만 사업 철학은 확고하다. 매 시즌 디자인 재활용 없이 새로움을 선보인다는 원칙이 고객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에 더해 정 대표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전략으로 명품과 스파(SPA) 브랜드 틈새에 집중했다. 틈새라고 표현하기엔 면적이 꽤나 넓다. 부족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스파만 찾는 젊은 층에게 ‘K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퍼뜨리겠다는 시나리오다. 그는 특히 유럽을 겨냥하고 있다.
“유럽 패션 시장은 고가의 명품과 저가 스파로 양분돼 있어요. 명품 살 돈이 없으면 저렴한 스파 브랜드 옷을 택하는 구조입니다. 디자이너 이름을 건 의류를 명품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전하면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죠. 온라인 플랫폼에서 신생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주시할 부분입니다.”
오아이오아이는 20대 초·중반 여성 고객을 중심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지난 2015년부터 연 매출 10억원을 넘어섰다. 젊은 층의 소비동향을 주시하는 큰 기업들과의 협업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롯데칠성은 오아이오아이와 손잡고 탄산수인 ‘트레비’ 한정판 패키지를 출시했고 토니모리도 화장품에 ‘오아이오아이’ 로고를 새겨 넣는 등 합작이벤트를 열었다.
정 대표는 영국에 이어 다음 목표지로 미국과 중국, 일본을 정하고 공략 중이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를 통해 구축한 영문·중문 온라인 쇼핑몰에는 중동 지역 고객들까지 유입되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상반기에 추가로 론칭한 캐주얼 테마 서브 브랜드 ‘오이오이(5252)’로 고객 층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오아이오아이’가 20대 초·중반 여성용이라면 ‘오이오이’는 10~20대 남녀 모두에 맞춘 브랜드다. 그는 “끊임 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소화하려면 서브 브랜드가 필수였다”며 “대한민국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로서 해외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 넓혀 한국 패션디자인의 역량을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