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에 대형 무대와 스크린이 설치됐다. 이틀간 열린 이번 행사에는 5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런던=서은영기자
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런던=서은영기자
영국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지하철 채링크로스역 출구를 벗어나기 무섭게 환호성이 쏟아진다. 유럽 내 잇따른 테러로 예년만큼의 인파가 몰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유럽 최고의 공연예술 축제로 꼽히는 ‘웨스트 엔드 라이브(West End Live) 2017’이 열리는 트라팔가 광장에는 개막 1시간도 안돼 10만명 안팎의 관중이 몰렸다. 광장을 둘러싸고 평소보다 많은 수의 경찰 인력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지만 담장 안쪽의 세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축제 첫날인 24일(현지시간)의 여섯번째 무대를 장식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팀이 화려한 탭댄스와 함께 ‘브로드웨이의 자장가(Lullaby of Broadway)’를 부르고 있고 관중들은 떼창과 환호성으로 응답했다.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에서 공연을 관람 중인 관객들. 뒤로 내셔널 갤러리가 보인다. /런던=서은영기자
올해로 13회를 맞은 웨스트 엔드 라이브는 웨스트민스터 시의회와 런던극장연합(London theatre Society)이 매년 6월 이틀간 런던 서쪽의 극장 밀집지역인 웨스트 엔드의 관문 ‘트라팔가 광장’에서 공동 주최하는 무료 축제. 매년 이틀간 열리는 행사에 50만~60만명(누적 기준)의 관중이 몰린다. 웨스트 엔드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공연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곳.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 4대 뮤지컬의 발상지인데다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콧대 높은 극장들이 많은 곳인지라 이날 행사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났다.24~25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웨스트 엔드 2017’ 라인업 /사진제공=공식 홈페이지 캡처
영국인들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알아주는 이 축제의 진면목은 웨스트 엔드의 주요 공연을 핵심만 모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축제는 58개 공연 팀에서 840여명이 출연해 116곡의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를 선보였다.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42번가’ ‘위키드’ ‘라이언킹’ ‘킹키부츠’ 같은 유명 작품들뿐만 아니라 신작들까지도 한 자리에서 모아 볼 수 있었던 덕에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알라딘, 드림걸즈, 애니 등 브로드웨이에서 검증받은 대작들도 이번 축제에 처음 초청되며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에서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던 ‘레 미제라블’ 배우들과 한 여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런던=서은영기자
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에 마련된 라이언킹 부스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객들 /런던=서은영기자
그런데 전 세계 공연 애호가들을 끌어모으며 승승장구하는 웨스트 엔드에서 굳이 공연 하이라이트를 모아서 보여주는 축제를, 그것도 무료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줄리언 버드 런던극장연합 회장은 “웨스트엔드 라이브 페스티벌은 올리비에 수상작부터 장기 상연 공연은 물론 대중들에겐 생소한 신작까지 다채롭게 선보이는 세계 최대 뮤지컬 축제로 자리잡았다”며 “이 행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시장으로 꼽히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쇼케이스일뿐만 아니라 웨스트엔드의 성과를 자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국내에도 ‘뮤지컬 노리클럽 채널 M’ ‘신사들의 품격’ 등 인기 뮤지컬 배우를 4∼5명 정도 모아 그들이 초대한 뮤지컬의 다양한 넘버를 소개하는 콘서트나 대표적인 뮤지컬 페스티벌인 ‘뮤직 오브 더 나이트-더 그레이티스트 오브 뮤지컬’ 등이 있지만 무료 축제는 아니다. 축제 규모 역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웨스트 엔드 라이브는 런던 뮤지컬을 모두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에서 후크 선장 페이스 페인팅을 한 어린이 /런던=서은영기자
웨스트 엔드 라이브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기 위한 일회성 행사로 기획됐던 축제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물론 축제 스폰서 기업들과 공연업계에서도 호평을 받자 시 의회는 이를 연례 행사화하고 10만 파운드에 달하는 예산을 즉각 편성했다. 이 축제는 관객들의 공연 선택을 돕는 쇼케이스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올해 행사의 경우 현장 예매 실적이 지난해보다 41% 증가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물론 이 행사가 지금까지 이어진 데는 시 의회의 예산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과 지역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뒷받침이 됐다. 매년 행사에 마스터카드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는데 올해는 랜드섹, 노스뱅크, 에드워디언 호텔, 더웬트 런던 등이 후원 기업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에는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올리비에 시상식 부스를 마련해 관람객들이 모형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꾸며놨다. /런던=서은영기자
이 같은 후원을 바탕으로 축제 현장에서는 공연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린다. 특히 올리비에 시상식 부스에서는 모형 올리비에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고 디즈니 부스에서는 라이언킹과 알라딘 속 인물 마네킹과 기념 촬영도 할 수 있다. 페이스 페인팅 이벤트를 포함, 어린이 관객들이 참여할만한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웨스트엔드 라이브 2017이 열린 24일(현지시간) 런던 트라팔가광장을 둘러싸고 경찰 병력이 다수 배치됐다. 잇따른 테러에도 10만명 안팎의 인파가 몰리자 경비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런던=서은영기자
이날 행사에서 돋보였던 것은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들의 화려한 무대만이 아니었다. 배우와 스태프,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연대의식은 외지인의 눈에도 인상적이었다. 올해 행사에는 처음으로 수화 통역이 도입되면서 청각 장애인들도 배우들의 대사와 노랫말을 음미하며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25일 행사가 끝난 이후에는 트라팔가 광장 인근의 한 극장에서 웨스트엔드 배우들의 주도로 그렌펠타워 화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기금 모금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올해 축제는 이미 막을 내렸지만 웨스트 엔드 라이브는 매년 6월 주말 이틀간 열린다. 보통 정확한 개최일은 3월 정도에 발표되고 이후 순차적으로 라인업도 나온다. 진정한 뮤지컬 애호가라면 축제 기간에 맞춰 런던 여행을 계획해 볼만하겠다.
/런던=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