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
평생 아름다운 말들의 빛을 찾아 헤맸다. 훌륭한 시나 소설, 위대한 영화의 명대사, 일상 속에서 나누는 말들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 것이 내 인생의 밑그림이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말들이 지닌 뜻밖의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문어체에서는 사용하기 좋지만 구어체에서는 영 어색해진다는 것이다. 글로 읽을 때는 더없이 반짝반짝 빛나던 표현이 말로 하려면 무척 쑥스럽고 겸연쩍어질 때가 많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 진달래꽃)”라는 아름다운 시구를 실제로 대화하면서 쓴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완전한 언문일치가 불가능한 우리말의 특성상, ‘구어체의 아름다움’은 시나 소설과 달리 좀 더 즉흥적이고 소박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글쓰기의 아름다움과 말하기의 아름다움도 사뭇 다르다. 글쓰기의 아름다움이 차분히 절제된 언어나 정성스레 세공된 언어에서 온다면, 말하기의 아름다움은 유창함과 재치, 그때그때의 변화무쌍한 상황에 딱 들어맞는 돌발성과 우연성에서 올 때가 많다. 그리하여 구어체의 언어는 꼭 아름답거나 화려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접어 나빌레라(조지훈, 승무)”같은 현란한 시어들보다도 오히려 평범한 대사가 ‘꼭 필요한 때’에 쓰였을 때 어떤 명시나 명대사보다 아름답게 다가온다. 꼭 눈부신 수사학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의 진실한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 어떤 평범한 대사도 소통의 맥락 속에서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예컨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마디, ‘고맙습니다’라는 마음의 표현, ‘미안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사과, 이 세 가지만 제대로 해내면 인생에서 큰 실수는 막을 수 있다. 첫째, ‘안녕하세요’의 힘은 무한하다. 어떤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만 해도 그 공간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인사성이 밝다는 것은 일단 사람의 첫인상을 좋게 만든다. 인사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는 것은 엄청난 재능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뭘 해준 것도 아닌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마냥 기분이 좋다. 그저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지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갑고 좋은 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둘째,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의 표현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감사 인사를 몸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인생의 작은 기쁨에도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셋째, ‘미안합니다’의 힘은 더욱 강력하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관대하다. 만남의 인사, 감사의 인사, 사과의 인사 중에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것은 사과의 인사가 아닐까. 자존심을 내려놓고, 변명이나 체면조차 내려놓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어내는 진짜 용기다.
언어의 ‘있음’이야말로 우리의 소통을 빛나게 하지만, 때로는 언어의 ‘없음’이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환기시킨다. 어떤 언어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없을 때 그 언어의 빈자리를 통렬히 느끼게 된다. 만남의 인사가 있어야 할 곳에 인사는커녕 인기척도 없거나, 감사의 표현이 필요한 자리에 감사는커녕 ‘당연히 받을 것 받았다’는 표정만이 있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결코 나타나지 않는 언어, 그것은 주로 ‘사죄’의 언어일 때가 많다.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표정만으로도 화해의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미안’은커녕 ‘미동’도 하지 않는다. ‘고객님, 사랑합니다’와 같은 뜬금없고 영혼도 없는 애정표현은 포화상태인데, 정작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이 필요한 곳에는 황량한 침묵만이 감돈다. 가장 마음 아픈 언어의 빈자리는 ‘안녕’이란 말조차 할 기회가 없을 때다. ‘안녕, 다음에 만나’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우리에게 다시는 ‘다음’이 없음을 알 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도저히 기약할 수 없을 때. ‘안녕’이라는 그 흔한 단어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귀한 마음의 보석이 되고 만다. 지금부터 우리 서로에게 반가움과 살가움과 애틋함의 메시지를 더 자주, 더 많이 보내주면 어떨까. ‘안녕, 또 만나’라고 인사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바로 이 시간, 이 인연의 고마움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