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위대한 캣츠비’, 지독히도 방황하는 사랑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대는 치열하다. 청춘은 지독하다. 그래서 20대 청춘은 모든 감정에 치열하게 덤벼들고 지독하게 겪는다. 그들이 향유하는 것들은 때로 비이성적이고 과도하게 본능적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고 있으면, 나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2004년부터 연재된 강도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갓 성인이 된 20대 청춘 군상의 취업 및 학업, 경제적 문제에 대한 현실적 고뇌를 담았다. 또한 서툴렀지만 충실했던 사랑과 우정, 성인이 돼가며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무대적 언어와 뮤지컬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사진=서울경제스타 DB
친구 하운두의 달동네 자취방에 얹혀살던 백수 캣츠비는 6년간 사귄 페르수에게 청첩장을 받는다. 예상치 못한 이별에 괴로워하던 그의 앞에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선이 나타난다. 캣츠비는 선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페르수의 존재는 떨쳐내기가 힘들다. 다시 나타난 페르수는 캣츠비에게 엄청난 사실을 알리고, 관계는 다시 변한다. 지독한 이야기다.

무대 위 캣츠비와 선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격에 대해 논한다. 선은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돌볼 권리가 있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목소리를 높일 자격이 있다고 외친다. 관계로 상처받은 모든 이들을 향한 위로다. 이어 사랑을 권장하고 포용하는 시선도 드러난다. “사랑의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이라며 모든 사랑을 존중한다.

우정과 사랑 등 감성적인 부분만 건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대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괴감만 팽배한 시대. N포세대로 불리는 청춘 캣츠비에게 면접관은 “충분한 경력을 갖추고 돌아오라”고 짧은 평가를 내린다. 캣츠비는 말한다. “나 같은 놈은 어디서 경력을 쌓냐”고. 시대를 ‘웃프게’ 반영한 현실감 넘치는 에피소드다.

동시에 자기객관화의 시도도 그려진다. 상대방이 백조일 줄 알고 만났는데 오리였다는 것에 실망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부터가 오리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인물을 통해서다. 네 남녀의 꼬이고 꼬인 애정의 방향 속에서도 자아에 대한 성찰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하나의 갈래로만 뻗어나가지 않듯, 무대 위에는 갖가지 색의 인식이 혼재된다.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막연히 나완 다른 무대 위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감성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이성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과거 어리숙했던 내 경험과 선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사랑에 눈멀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중에 가서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후회할지라도 당시 자신에게 그 선택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정유란 프로듀서, 변정주 연출, 허수현 음악감독이 힘을 모았다. 여기에 권영임 안무감독이 새롭게 합류했다.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선을 관객들에게 보다 짜임새 있게 이해시키기 위해 안무에 공을 들였다. 허수현 음악감독은 뮤지컬 속 여러 인물이 그리는 감정선이 복잡한 만큼, 초연의 송스루 방식을 탈피하고 넘버를 수정해 감정의 흐름을 선명하게 끌어올렸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사진=서울경제스타 DB
원작자의 의도를 제작진이 알맞게 짜놓으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연기자의 몫이다. ‘위대한 캣츠비’에서는 특히 아이돌의 활용이 돋보인다. 지난 2015년 초연에서 하이라이트 손동운이 뮤지컬 배우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데 이어, 이번에는 틴탑의 천지가 캣츠비 역에 캐스팅됐다. 블락비 유권과 보이프렌드 현성은 하운드로 열연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자괴감, 이것을 기반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현재 아이돌인 이들만큼 적절한 배우가 또 있을까. 프레스콜에서 만난 천지와 현성은 각각 캣츠비와 하운드 자체로서 무대에 임했다. 함께 캣츠비 및 하운드에 캐스팅 된 조상웅, 김지휘, 이우종, 정태우, 김지철 등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도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 한 갈래로 설명되지 않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매 지점마다 절묘하게 표현했다.

캣츠비의 대사 중 “겨울이 아주 길고 깊어도 결국 봄은 온다”는 구절이 있다. 아무리 지독하고 벅찼던 사랑도 시간 지나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빛이 바래있다. 그래서 묻는다. 지독히도 방황하는 사랑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하나다. 가고 싶은 어느 곳이든.

이 뮤지컬을 비슷한 또래의 친구 또는 연인과 보기를 추천한다. 격변기를 겪고 있는 이에게는 조금 더 성숙한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격변기를 지나 안정을 찾은 이에게는 서툴렀던 과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