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총리관저 앞에서 기자들에게 전날 치러진 도쿄도의원 선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골리앗’ 아베가 ‘다윗’에게 졌다. 승승장구했던 ‘아베 1강’ 체제가 도민우선(퍼스트)회라는 암초를 만나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2일의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신생 지역 정당에 불과한 도민퍼스트회에 1당 자리를 내주며 역대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더불어 과거 5년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기록해 ‘선거의 귀재’로 불리며 1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아베 총리의 입지도 기로에 서게 됐다.
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개혁적 이미지를 앞세운 도민퍼스트회는 공천한 50명 가운데 49명이 당선되는 등 지지 세력을 포함해 총 79석을 차지했다. 반면 이전 의회에서 57석으로 1당이었던 자민당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자민당은 2009년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후 연이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까지 민주당(현 민진당)에 밀려 정권을 내줘야 했던 악몽이 다시 시작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아베의 참패로 독주체제에도 균열이 가며 자민당 내 반(反)주류가 결집할 가능성도 위험 요인으로 제기된다. 오는 2018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전에 도전하는 당내 견제 세력도 늘어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선거 참패에 대한 당내 불만을 비롯해 민심 이반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조기 개각’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8~9월 개각설이 유력했지만 선거 후유증에서 빨리 탈출하기 위해 늦어도 8월 초에는 인적 구성을 쇄신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가 거세다. ‘포스트 아베’로 거론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장관은 “도민퍼스트회가 이긴 것뿐 아니라 자민당이 진 것”이라며 “개각 시기와 내용이 앞으로 정권운영의 키를 쥐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개각이 이뤄지더라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부총리가 주축이 되는 현 구조는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대신 ‘자위대 선거 지원’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경질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고이케 도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총리직 도전 등 국정 진출을 위한 신당 창당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상태는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도지사 직무에 전념하겠다며 도민퍼스트회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고이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고이케 지사와 연계해 집권을 노리려는 목소리가 차츰 커질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실제 자민당과 공조 관계인 공명당은 이번 도의회 선거에서는 도민퍼스트회와 손잡아 23석을 확보하며 정국의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지난 2009년 5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제1야당 민진당은 불과 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또한 여성 의원 36명이 의석을 차지해 역대 최고의 여성 의원이 배출되는 등 변화의 물결이 이어졌다.
결국 고이케 지사는 앞으로 아베 총리 등 집권 자민당의 행보 등을 주시하면서 신당 창당 여부, 창당 시 시점 등을 숙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아베의 조기 개각 승부수가 통하지 않는다면 일본 정가의 정계개편 속도는 그만큼 빨라질 수 있는 셈이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를 예견하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고이케의 다음 행보에 의구심이 가열되고 있다”며 “여야를 넘어 정계 전반을 뒤흔들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쿄도의회 선거 여파로 꺼내든 ‘개각’ 카드는 일본의 외교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교도통신은 미국과 일본 정부가 오는 14일 워싱턴DC에서 개최하려던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일정이 연기 이유라고 밝혔지만 통신은 이나다 방위상의 경질 가능성이 이번 결정의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