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해주면 미국은 세 가지 고민을 덜게 된다. 우선 일반 상품 교역에서 우리나라에 적자를 보고 있는 무역역조 문제를 방산 분야 교역으로 완화할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 등에서 다량 실전 배치돼 우수성을 인정받은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한층 개량한 기종을 도입함으로써 신형 훈련기의 성능 결함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울러 생산기술뿐 아니라 생산비용 면에서도 우수한 한국을 T-50A의 부품생산기지로 삼음으로써 폭증하는 미 공군의 군용기 도입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흥국 등에도 한국과 공동수출 할 수 있을 정도로 신형 훈련기의 ‘가성비’를 높일 수 있다.
미 공군이 T-50A를 구매하는 대신 우리 정부가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하면 한국은 역시 세 가지 수혜를 입게 된다. 우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미국 시장 진출을 통한 국내 항공 산업 도약의 기회가 열린다. T-50A용 부품 및 반제품을 카이가 생산하는 과정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T-50A 부품은 주로 카이의 경남 사천 공장에서 제작하게 되는데 항공기는 보통 공정의 90%가량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므로 이를 담당할 고급 숙련기술직 일자리가 늘어나게 된다. 조선 산업 불황으로 실업난에 허덕이는 경남 지역에 단비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미국산 전투기 구매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의 통상 압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고위 당국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록히드마틴과 카이는 매우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제 3국에도 수출하겠다는 게 최종 목표다. 미국과 해외 판매를 포함하면 최대 총 2,000대의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사업금액은 100조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메가톤급의 윈윈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양국에서 총 35만명 이상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T-50A는 당초 미 공군이 노후화된 T-38C훈련기 대신 도입하려는 차세대 고등훈련기(APT) 사업의 1순위 후보 기종으로 일찌감치 꼽혀왔다. APT는 주로 F-35 등 5세대 전투기 파일럿 양성을 위해 추진됐는데 마침 F-35의 개발 및 제조사는 T-50A를 카이와 공동개발한 미국 록히드마틴이다. 더구나 T-50A의 기본형인 T-50은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초음속 훈련기로 도입돼 성능을 인정받았고 일부 개량된 공격기(FA-50)로 파생 개발될 정도여서 당초 업계는 APT 공개입찰을 ‘록히드마틴-카이컨소시엄’의 1강 구도로 진단해왔다.
*국내 방산업계 분석 자료 기준
그러나 보잉이 뒤늦게 스웨덴 사브와 손잡고 뛰어들면서 경쟁구도는 1강에서 양강구도로 재편된 상태다. 미국의 보잉은 미국 정부의 육·해·공군 통합용 스텔스 전투기 개발 및 구매사업에서 경쟁사인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에 밀리는 등 전투기분야에서 거듭 고배를 마셔 해당 분야의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때 세계 최강의 하이급 전폭기 F-15이글을 내세워 하늘을 제패했지만 후속 개발 예정 모델이던 준(準)스텔스기 F-15사일런트이글(F-15SE)마저 우리 정부의 차세대 전투기(F-X)사업에서 F-35에 물먹어 한층 더 타격을 입은 상태다. 따라서 이번 APT 사업 입찰에 사생결단의 자세로 참여한 것이다. 이처럼 경쟁구도가 복잡해진 와중에 문 대통령이 미국산 전투기 구매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밝힌 것은 록히드마틴과 카이에겐 응원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자국 전투기를 더 사주겠다는 데 거절할 이유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보잉의 F-15어드밴스드나 F-15사일런트이글 구입을 결정할 경우 보잉을 살릴 수 있다. 혹은 문 대통령이 F-35를 추가 구매하다면 규모의 경제효과 덕에 록히드마틴의 F-35 생산단가가 낮아져 해당 기체를 구입하는 미군에게도 예산절감 혜택이 가게 된다. 쉽게 말해 문 대통령은 보잉을 살리거나 록히드마틴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카이를 육성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