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음악시간에 한 번쯤 불어본 친숙한 악기이기 때문이다. 일명 ‘국민 악기’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이 작은 리코더의 선율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울려 퍼진다면 어떨까. 한국에서는 리코더를 전공악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는 대학에 리코더 전문 과정이 있을 만큼 보편적인 악기다. 이 작은 리코더로 10대에 세계 콩쿠르를 휩쓸고 영재로서 조기 대학 졸업까지 마친 당찬 리코디스트가 있다. ‘리코더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그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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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에 홀로 해외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심신이 불안정할 때가 많았어요. 힘이 들 때 속시원하게 터놓고 기댈 곳이 없었으니까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먹으면서 연습만 하다보니 체중이 무려 15kg이나 불어나기도 했죠. 여성 연주자로서 자기관리가 충실히 했어야 했는데 가장 예민한 시기여서 그런지 매우 힘들었던 것 같아요.
흔히 연습하다가 지치면 잠시 쉬기도 하잖아요. 근데 저는 슬럼프가 왔을 때 오히려 더 연습에만 매달렸어요. ‘연습에 집중하면 금방 낫겠지’라는 생각이었죠. 그러고 나니 정말 1%도 남김없이 에너지가 방전되더라고요. 특히 일상의 밸런스가 깨지다 보니 리코더를 못들 정도로 앓아 누웠죠. 결국 주변의 권유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른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쭉 연주자의 입장에서만 공연을 해왔으니 반대로 관객의 입장에서 힐링을 얻을 수 있었죠.
흔히 대회에 참가하는 연주자들이 금기시하는 게 있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 다른 연주자의 공연을 보지 않는 것이죠. 한 번은 제가 그걸 어긴 적이 있어요. 일본에서 열린 국제 콩쿠르였죠. 제비뽑기로 참가 순서를 정하는데 백여명 중에 하필 제가 마지막 끝 순서가 된거예요.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막판 스퍼트를 올려 연습하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이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정말 제 바로 앞 참가자의 공연까지 빠짐없이 챙겨봤어요. 결국 제 연주는 망쳤죠. 운이 좋게 3등 수상했지만요. 국제 콩쿠르를 나가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다 만나게 되니까 그 공연을 보는 것이 묘미인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선진국의 교육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어요. 해외 생활 초반엔 어머니와 함께 살았었는데 제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먼저 문화를 체험해보고 음악적 배움을 얻길 바라셨죠. 심지어 세계 각국의 유명 교수들에게 어머니께서 직접 메일을 보내 교수님 저택에 초대받은 적도 있어요. 적극적인 어머니 덕분에 여러 나라의 교수님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던 것 같아요. 세계 각국의 교수님들을 만나면서 음악적인 테크닉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 방식, 가치관까지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해외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직후 가장 먼저 한 활동은 ‘사랑을 주는 콘서트’를 기획한 거였어요. 양로원, 복지회관, 병원 등 노약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순회 공연을 했죠. 리코더의 음색이 노약자들에게 에너지를 북돋아 준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길거리 광장부터 병원 로비, 공원, 초등학교 운동장 등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연주했어요. 가까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호흡해보고 싶은 열망이 컸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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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리코터를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교본 없이 CD로 듣고 익혔어요. 해외로 유학을 가서 부는 방법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한 번 자리잡힌 호흡과 자세를 다시 고치는데 정말 고생했어요. 국내에 들어와서 초등학생 강연클래스를 진행하는데 문득 저같이 실수하는 학생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교본을 쓰게 된거죠. 대중가요부터 전통 클래식까지 다양한 곡의 악보뿐만 아니라 직접 제가 연주한 영상 링크들도 함께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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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클래식 장르를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물론 어려운 테크닉이 필요한 곡들이 많긴 하지만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좋은 클래식 연주가는 대중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잘 알고 잘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역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공연을 할 때 터닝메카드 주제가나 트와이스 노래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면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고 박수치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들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음악을 하는 리코디스트가 되고 싶어요.
흔히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국민들이 1인 1악기를 다룰 수 있다고 해요. 사실 한국에서도 리코더가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어 봤을 만큼 대중적인 악기잖아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고요. 특히 다른 악기에 비해 가격도 싸고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리코더가 한국의 국민악기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평소에 틈틈이 영화를 즐겨보는데요. 특히 영화 속 장면마다 삽입된 음악에 관심이 많죠. 영화의 스토리나 배우의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음악 역시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회가 된다면 꼭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해보고 싶어요.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