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주 외국인 200만 시대를 맞아 이들을 겨냥한 맞춤형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시중 은행마다 쏟아지고 있다. 그간 시중 은행들은 외국인들을 단골 보다는 스쳐 가는 고객 정도로 여기며 이들을 대상으로 소극적인 영업만 해왔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송금을 통해 수수료 수익을 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주한 외국인들의 경제 활동 규모가 날로 커지고, 국내 생산 활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음에 따라 해외송금을 넘어 다양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앞세워 이들의 ‘부(富)’를 적극적으로 끌어 안으려 하고 있다.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지난 해 204만 명까지 늘어났다. 전체 인구 수 대비로는 4%에 육박하는 수치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일정한 소득을 꾸준히 창출하고 있다. 시중 은행들의 눈에 매력적인 신규 고객일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최근 들어 앞다퉈 카드·적금 등 다양한 외국인 전용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외국인 전용 체크카드를 내놓은 데 이어 이달 초 ‘더드림 전세자금대출’ ‘더드림 적금’을 선보였다. KB국민은행은 외국인 전용 ‘웰컴 플러스 적금’을 내놨고, KEB하나은행도 외국인 전용 급여통장, 적금·예금 패키지 상품인 ‘이지-원 팩’으로 외국인 자산관리에 나서고 있다.
금융서비스도 점차 다양화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4월부터 12개 국적의 외국인 고객들로 자문단을 꾸려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선에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 자문단은 다른 외국인 고객에게 금융 관련 상담을 해주는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아울러 외국인 고객을 겨냥한 디지털 서비스도 강화되는 추세다. 신한은행·우리은행(000030)·KEB하나은행 등에서 10개 국어 내외로 이용이 가능한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외국인 전담 부서까지 생겨났다. KB국민은행의 ‘외국 고객부’, 신한은행의 ‘외국인 투자사업부’, 우리은행의 ‘외국인 영업부’ 등 별도 조직에선 외국인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최초로 영업점 창구직에 외국인을 신규 채용할 계획인데 중국·러시아·미얀마 등 10여 개국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은행권의 시도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해온 주 업무인 해외송금업에서 보폭을 넓혀 은행 안에 고객의 돈을 장기적으로 묶어두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당장 해외송금 시장에서 유일한 공급자였던 은행은 하반기 들어 인터넷전문은행과 소액해외송금업체들의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시중은행들이 더 간편해진 송금서비스로 외국인 고객들을 붙잡으려 하고 있지만,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하는 신생 업체들보다 우위를 점하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출범을 앞둔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해외송금 수수료를 시중은행의 10%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 서비스가 과거엔 해외송금에 머물렀다면 이젠 다양한 상품을 통해 장기적인 고객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면서 “장기 고객이 많이 확보되면 가장 큰 먹거리인 해외송금에서도 고객을 뺏기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래 거주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이들을 장기고객으로 묶어두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상품의 경우 담보를 잡아야 하는데 외국인 고객이 그러기도 쉽지 않고, 언제든 (본국으로)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 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대출 상품 수요가 있어 우량고객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신용대출 상품을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