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후퇴’는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퇴보, 신자유주의 득세와 부작용 등을 훑고, 그 근본적인 문제를 진단하는 한편 대응책을 논의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을 비롯해 아르준 아파두라이, 낸시 프레이저, 브뤼노 라투르, 볼프강 슈트렉, 슬라보예 지젝 등 15명의 저명한 지식인이 참여했다. 책은 세계적인 석학의 통찰뿐만 아니라 이들이 언급한 21세기는 ‘권위주의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 트럼프를 예상한 듯 ‘저급한 선동 정치가’의 부상을 예견한 철학자 리처드 로티 등도 만날 수 있어 세계 정치·경제·사회사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혀준다.
우선 아파두라이를 비롯해 도나텔라 델라 포르타 등은 트럼프를 비롯해 인도의 모디 총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등 권위주의적 리더들을 예로 들어 민주주의 약화를 이야기한다. 트럼프는 대표적인 반무슬림주의자, 반이민자에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등 민주주의의 대표 가치인 다양성에 대한 개념이 약한 인물이다. 모디 또한 성적·종교적·문화적·예술적 자유에 대한 존중이 없기로는 트럼프 못지않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해 타민족 혹은 약자들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폴라니에 따르면 사회는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한 뒤에는 사회보호를 요구하는 대항운동이 등장한다. 그는 저서 ‘거대한 전환’(1944)에서 19세기의 자유주의 물결을 설명하는데, 20세기 후반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신자유주의의 변화와 유사한 점들이 보인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 화폐의 무분별한 상품화가 결국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폴라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이들의 ‘대항운동’은 방어적이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태도를 취한다고 봤는데 트럼프나 브렉시트, 모디 총리 등에서 이러한 특징은 그대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약화는 이대로 막을 수 없는 것일까? 아파두라이의 의견에서 하나의 최선책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유럽을 예로 들어 진보대중(노동자, 지식인, 활동가, 정책입안자)이 경제적·정치적 자유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유럽 내 공통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EU에서 자신들의 공동 목표가 없다고 결론 낸 유권자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공동의 목표가 없는 양극화 사회였기에 트럼프라는 선택이 가능했다. 1만8,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