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었어요. 오전에는 현재를 찍다가 오후에는 미래를 찍고…양쪽을 다 연출하면서 느껴지는 혼란스러움도 있었고, 주어진 시간과 재원 안에서 퀄리티를 끌어내야 하니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도 되더라고요. 미술을 선택하고 배우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도 힘들었고요. ‘써클’은 배우 입장에서는 좋은 작품이에요. ‘파트1’이나 ‘파트2’ 분량만 찍다보니 빨리 끝났거든요. (웃음) 그런데 저는 연기도 봐야하고, 서스펜스 스릴러, 감정,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들어가는 것들이 총망라하다보니 힘든 것이 있었죠.”
사진=지수진기자
그래도 민진기 PD는 ‘써클’은 좋은 시도였다고 자평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케이블시장, 더 명확하게는 tvN의 채널의 색을 밝힌 것이다. “tvN이 개국한 이후 11년 동안 끊임없이 시도를 해 왔고, 변화해 왔어요. 급변하는 케이블과 업계의 상황 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을 개발 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SF소재는 가지 않았던 길이었던 거죠. 매력적이었고, 더 나아가서 ‘써클’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죠. 물론 여전히 보완 해야 할 부분은 있어요. 예를 들면 제작비 적인 부분이나, 각본에서도 더 기획기간을 다지고 촘촘하게 만들 필요도 있어요.”
민진기 PD가 말한 ‘써클’의 의의는 기존의 제작형태와 다르게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4명 작가 공동으로 집필하는 시스템이자, 신인 연출자를 적극 지원했다는 것이다.
“자체제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로서, 이 같은 부분에서는 선점적인 시스템이 아닐까 싶어요. 공동 집필을 했던 신인작가들이 커서 하나의 작가로 성장할 수 도 있죠. 이 같은 시스템이 확대가 되면, 예능PD였던 제가 드라마를 연출했던 것처럼, 드라마를 연출하는 사람들도 예능피디도 할 수 있는 저변확대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모로 사랑을 받았던 ‘써클’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영역이 있었다. 바로 시청률이다. 여전히 높은 SF소재에 대한 장벽과 더불어 중간 유입이 힘들다보니, 화제성과 달리 시청률은 그리 높지 못했다. 하지만 민진기 PD는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 물어보니 오히려 더 망할 거라고 생각했었단다.
“저는 이런 장르물과 소재로 방송을 한 드라마가 지금의 시청률이 나온 것만으로 굉장히 만족해요. 솔직히 시청률이 더 낮게 나올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타깃시청률이 tvN 역사상 두 번째 높았을 뿐 아니라, SF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20~30대 여성 시청률 또한 나쁘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소재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웃음)”
‘써클’의 중심 화두는 바로 ‘기억’이었다. 이 같은 주제를 잡은 것에 대해 민진기 PD는 “지금의 시대가 범죄도 많고, 고도로 기술이 발달됐는데 행복하기 보단 불행한 사람이 많다. ‘왜 불행할까’에서 ‘써클’은 시작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아닐까, 이걸 드라마로 이야기를 한다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되겠다 싶었죠. 이 같은 부분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 사회의 전체 맥락을 봤을 때 아픈 기억은 많잖아요. 트라우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인데, 이를 삭제할 것인가 아니면 가지고 가는 것이 맞는가와 같은 원론적인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이는 굉장히 철학적인 화두라고 생각했고, 이를 던진 것에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써클’에서는 나쁜 기억을 삭제하는 ‘기억차단시스템’이 등장한다. 만약 기억차단시스템이 현실에 생긴다고 가정했을 때, 나쁜 기억을 가지고 가는 맞는 것일까 아니면 지우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민진기 PD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여지이기는 하지만 사실 정답은 없다”고 웃었다.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시대적인 포인트가 강렬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주요 화두로 던졌죠. ‘써클’은 기억이라는 화두가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요, 기억은 볼 수 있지만 추억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기억이라는 자체가 그냥 원론적으로 봤을 때 메모리라고 치면, 추억은 감정이 들어가니까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한들 감정까지는 볼 수는 없죠. 결국 추억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는 문제 해결의 중요한 키라고 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 우진과 준혁이 휴먼비의 기억 해킹을 고민하면서 이들 형제의 추억인 모르스 부호로 대화를 주고받는 신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신 포인트를 좋아해요. ‘써클’의 주요 메시지가 잘 녹아 있거든요. 작가들이 참 잘 썼어요. (웃음)”
사진=지수진기자
‘써클’의 마지막은 ‘권선징악’이었다. 자신만의 ‘멋진 신세계’를 만들기 위해 큐브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보여주었던 박동건(한상진 분) 교수는 끝까지 이를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다 결국 100층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숨을 거뒀다. 지극히 박동건다운 최후이기는 했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허무한 죽음이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박동건이 1층으로 내려가서 주워오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박동건 교수의 큐브에 대한 집착의 강도가 시청자들에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큐브에 대한 집착의 화면이나 이야기가 조금 더 길었다면 이 같은 박동건의 집착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회차가 짧아 생략이 되니, 조금 생뚱맞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감정들을 충분히 만들었다면 더욱 개연성이 살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어요.”
민진기 PD는 박동건의 죽음보다 인상이 깊은 장면으로 이현석(민성욱 분)의 자살시도를 꼽았다. 집착 때문에 죽은 박동건을 본 다음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대는 이현석의 행동과 그가 남긴 말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현석의 ‘교수님이 원하던 멋진 신세계가 이런 건가요’라는 대사가 많이 와 닿았어요. 박동건 외에 이현석이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로는 ‘이상’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순진했던 사람이었던 것이죠. 맹목적이지만, 단순하게 멋있는 세상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인물이 이현석이었어요. 계속된 자아 분열 끝에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놓였던 이현석이라는 캐릭터를 민성욱 배우가 잘 살렸고, 그 신이 개인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12부작으로 짧게 끝난 만큼 시즌2는 물론이고, 감독판을 원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하자 민진기 PD는 밝게 웃으면서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적어도 tvN만큼은 시청자가 원하면 뭐든 된다”고 말을 했다.
“tvN은 어떤 곳보다도 시청자 분들의 의견이 열려있는 집단이니, 원하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고 저도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새로운 시도가 어색해도 응원해주시면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써클’의 흐름상 봤을 때 약간 단절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만약 감독판이 만들어진다면 2시간 분량의 영화적인 길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1, 2부로 압축해서 편집된다면 몰입감이 높아져서 훨씬 보시는데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여건이 돼야 할 수 있는 게 먼저겠죠. 하하.”
마지막으로 민진기 PD는 ‘써클’의 모든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이 배우 그대로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물론”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었고, 만약 시즌2까지 같이 가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아직 시즌2와 관련돼 결정된 바가 없어서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요. 우리 작품을 하는 와중에 여진구, 공승연, 김강우 등 배우 대부분이 다른 작품으로 다들 캐스팅이 잘 돼서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웃음)”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