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햄버거만 문제일까

김민형 사회부 차장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호흡기에 의존해 온몸에 주삿바늘을 꽂고 인형을 꼭 안은 채 잠들어 있다. 콩팥의 기능이 90% 가까이 손상돼 배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하루 10시간씩 복막 투석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천진난만해야 할 소녀의 비극에 국민들은 울었다.

불행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아직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먹은 햄버거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9월 경기 평택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은 뒤 아이가 복통을 호소하며 중환자실로 옮겨졌기 때문. 병원이 진단한 아이의 병은 이름도 생소한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이었다. 이른바 ‘햄버거병’이다.

HUS는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으로 발생한다. 2~10일(평균 3~4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발열과 설사, 혈변, 구토, 심한 경련성 복통 등이 나타난다. 장출혈성대장균 감염 외에도 세균성 이질균이나 폐렴구균 등의 세균이나 다른 바이러스 감염, 유전성 발병 항암제나 약제 복용 등에 의해 HUS가 발병하기도 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장출혈성대장균 감염 환자는 443명이었고 이 가운데 5.4%인 24명이 HUS를 앓았다.


HUS는 지난 1982년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이 집단 발병하면서 알려졌다. 햄버거를 먹은 여러 명이 동시에 탈이 난 뒤 사회문제가 되다 보니 햄버거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실제 감염경로는 햄버거 외에도 다양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잘 익히지 않은 소고기 등의 육류뿐 아니라 분변에 오염된 유제품이나 채소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식재료를 깨끗하게 씻지 않고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햄버거가 아닌 다른 음식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조리 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은 물론 집밥을 먹고도 HUS에 걸릴 수 있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은 대량의 음식을 빠른 시간에 조리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리 과정을 지키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근무자들의 ‘고백’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과연 햄버거만 위험할까. 어느 식당에서든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와도 ‘언제 음식이 나오냐’고 따지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몰리는 음식점은 여느 패스트푸드점보다 음식이 더 빨리 나오기도 한다. 재촉하는 손님들에게 맞추지 못하면 가게 문을 언제 닫을지 모를 일이다 보니 식당 주인들은 항상 “빨리 빨리”를 외친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이 ‘제대로 된 조리 과정’을 지키기 어렵게 하는 요인은 정작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음식을 주문하고 여유롭게 기다리며 셰프에게 제대로 된 조리 과정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자세가 HUS를 피하는 대안일 수도 있다. kmh204@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