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원들이 13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할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경주 본사 1층 로비에 앉아 건설 중단 반대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 참석해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안정성, 공정률, 투입·보상비용, 예비 전력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겠다”고 공언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사회적 합의의 방안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칭)’ 출범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시화됐다. 공론화위는 에너지 전문가를 철저하게 배제한 시민 9명으로 구성된다. 이에 맞춰 국무조정실은 지난 7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9명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위원 선정 절차에도 들어갔다. 정부의 바람과 달리 에너지 정책 전환에 대한 의사결정 방법들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때마다 원전 현장과 원전 지역, 전문가들의 찬반 갈등은 오히려 증폭됐다. 13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파행으로 문 대통령이 제시한 사회적 갈등 해결 방안이 효과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졌다.이사회 개최 불가가 최종 결정된 뒤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 백년지대계인 에너지 정책이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사회를 원천 봉쇄했다”며 “앞으로도 이사회가 개최되면 막아설 것이고 이사회의 배임 문제도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참여한 협력 중소기업 단체인 원자력산업살리기협회 역시 이날 성명을 내고 “40년 이상 국가 경제의 중심축인 원자력 산업을 위해 묵묵히 일해온 대통령님의 ‘새끼손가락’인 저희 중소기업들과 그 가족들이 생계수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한수원 본사 건물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지역주민 20여명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지역주민의 여론을 의식한 듯 이관섭 한수원 사장도 최종적으로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이 사장은 이사회가 열리기 전 김 노조위원장, 이 협의회장과 만나 “공사 일시중단은 공기업 입장에서 불가피하다”면서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한수원 이사회 파행으로 공론화위 출범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공론화위가 출범해 시민배심원단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에 대해 사회적 갈등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지나치게 빠르게 추진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과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 운영됐지만 오히려 사회갈등만 부추겼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단기간에 공론조사 방식으로 최종 의사결정을 하기로 한 만큼 공론조사의 공정성을 정부가 공언한 대로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갈등을 치유할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경주=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