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 발표]2년만에 원전 8기 규모 전력수요 감소 전망

"전력수급 차질" 비판 힘잃어...정부 '탈원전' 행보에 힘 실려
워킹그룹 "정치적 고려 없어...신뢰제고 위해 26일 학계와 토론"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수요전망 워킹그룹 회의에서 위원장인 유승훈(왼쪽)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와 참석자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2030년까지 당초 예상보다 11.3GW 규모의 전력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이 나왔다. 이는 신고리 5·6호기(각각 1.4GW) 규모 원전 8기의 설비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신고리 5·6호기 중단, 신규 원전 계획 취소 등을 비판하는 주요 논거였던 전력수급 차질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에 발맞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속도가 붙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난 7차 계획과의 큰 차이를 두고 탈원전 정책의 ‘코드’ 맞추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전력거래소와 전력수급기본계획위원회 수요분과위원회는 13일 서울 코엑스몰에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전망 워킹그룹 회의를 열고 국가 장기전력수요전망 초안을 발표했다.

이번 수요전망 초안은 제7차 때와 마찬가지로 ‘전력패널모형’을 통해 추정됐다. 전력패널모형은 전 세계 100여개국의 전력수요 패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경제성장률(GDP), 전력가격 변화 등을 변수로 넣어 전력수요를 도출하는 모형으로 김창식 성균관대 교수가 개발했다. 이 모형은 에너지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 ‘에너지이코노믹스’에 2016년 등재되기도 했다.

워킹그룹은 모형을 바탕으로 2030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대 전력수요는 101.9GW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15년 세웠던 제7차 기본계획의 추정치(113.2GW)보다 11.3GW 줄어든 수준이다. 건설 중단과 관련해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신고리 5·6호기의 발전 설비용량이 1.4GW인 것을 감안하면 원전 8기에 해당하는 규모다.

불과 2년 새 수요 전망치가 대폭 감소한 주요 이유는 경제성장률 전망치 변화 때문이다. 제7차 계획 당시 위원회는 우리 경제가 2029년까지 연평균 3.4%(구계열 기준 3.06%)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번 8차 계획에서는 성장률 전망치가 2.5%로 대폭 낮아졌다. 제8차 계획에 적용된 성장률 전망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3월 분석 발표한 수치다. 성장률 전망치는 전력 수요예측 변화의 70%가량을 좌우한다. 나머지 20%는 전기요금 인상 폭, 나머지 10%는 전력소비 패턴 등이 영향을 미친다.


김창식 교수는 “성장률이 3.5%가량인 고도 성장기의 전력 수요와 2.5% 성장하는 경제의 전력 소비량은 크게 다르다”며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과거와 달리 전력수요가 감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장률 전망치가 다소 상승하는 경우 전력수요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워킹그룹은 연평균 성장률이 2.7%를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 최대 수요는 104.5GW로 2.5% 성장할 때보다 전력수요가 2.6GW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제7차 계획과 비교하면 8.7GW 줄어든 수준이다.

이번 수요전망에는 전기요금 인상분도 반영돼 있다. 김상일 전력거래소 장기수요전망팀장은 “이번 초안에는 2017년 1㎾h당 112원 수준인 전기요금이 명목기준으로 140원까지 상승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2030년 100만대 보급을 목표로 하는 전기차의 확대, 2016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등으로 전력수요는 1GW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같은 초안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힘을 싣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정률이 28.8%에 달하는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해 모두 8기(11.3GW)의 원전 계획 취소를 공식화했다. 이들 원전의 발전설비 용량은 제8차 계획으로 줄어든 최대 전력수요보다 규모가 작다. 탈원전이 장기적으로 전력수급 차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금까지의 비판이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1435A04 전력수요설비용량
문제는 정부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수요전망이 불과 2년 새 급격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변화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맞아떨어진다. 워킹그룹은 이에 대해 수요전망에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학술지에 등재됐다는 의미는 그만큼 과학적인 검증을 받았다는 뜻”이라며 “모형에 주관적 의지나 정치적 고려 등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워킹그룹은 수요전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26일 관련 학계가 모인 자리에서 세미나 방식의 토론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경제성장률로 임의의 숫자를 넣은 게 아니라 KDI가 발표한 공식적 수치를 가져다 썼다”며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올 초 이미 고령화 등으로 급속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을 고려하면 2.5%의 성장률을 적용하는 게 적절하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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