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지난 3년간 폭염경보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올해는 6월16일 첫 경보가 발효돼 시기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이래저래 에어컨 켜기 어려운 에너지 빈곤층의 어려움이 커가는 시기다. 폭염만큼이나 탈원전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와 탈원전에 기반을 둔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논란이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에 대해 3개월 기한으로 공론조사를 벌이겠다고 했다. 이어 연말까지 탈원전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론조사도 전에 탈원전 로드맵이라고 단정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어쨌든 한다면 탈원전 로드맵이 먼저이고 그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인데 아쉬운 점이다. 또한 공론조사는 정보 제공, 시민배심원단의 학습 및 숙고가 필요한데 3개월 시한은 매우 촉박해 보인다.
공론조사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해 집단지성을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숙의민주주의 방법이다. 여론조사가 단편적 정보와 인식에 기초한 데 비해 공론조사는 다양한 정보와 사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사표시를 하게 됨으로써 보다 합리적인 여론수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론조사를 이론화한 스탠퍼드대학의 제임스 피시킨 교수에 의하면 공론조사는 장기적 정책방향, 특히 에너지같이 복잡한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고 대안 선택이 가능한 정책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고리 5·6호기 이후 정부가 고려하는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공론조사를 벌여야 한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지속에 따른 안전 문제와 건설 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초점을 두고 에너지 정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환경·전력수급·전기요금 등 다양한 요소를 다뤄야 할 것이다.
공론조사의 핵심은 중립적인 시민배심원단 구성과 정확한 정보 전달, 조사의 공정한 진행이다. 정부가 발표한 공론조사위원회 구성방안을 보면 공정성을 매우 배려한 것 같으나 시민배심원단 선발과 토론 진행 등 여러 과정에서 공정한 관리가 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론조사의 요소를 무엇으로 하고 어떻게 이용할지도 중요하다. 1996~1998년 미국 텍사스주 전력회사들이 실시한 공론조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공론조사는 화력발전과 재생에너지, 에너지 절약을 대상으로 환경·경제성과 더불어 공급안정성과 에너지 복지 측면에 대한 인식조사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력회사들은 풍력발전 투자를 시작했는데 공론조사는 결과뿐 아니라 공론조사 전후로 시민배심원단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선입견이 숙고과정을 거쳐 변한다면 어떠한 정보의 전달과 이해가 정책 결정에 중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주의 공론조사에서 재생에너지 도입을 지지하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지율이 공론조사 후 오히려 감소하고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과 화력발전에 대한 지지가 늘어났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한계와 공급 안정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텍사스주의 공론조사는 재생에너지 도입으로 인한 소비자의 추가 부담에 대한 용인 수준도 포함했다. 이번 기회에 논쟁이 되고 있는 가스발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요금 상승과 관련해 국민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해서도 조사한다면 자연스럽게 전원 구성 비율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탈핵 선언으로 에너지 정책이 정치 이슈가 돼서는 곤란하다. 정치 이슈는 이념논쟁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에너지는 국민 전체에 영향을 주는, 안심하고 먹고사는 문제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공론조사를 통해 정치적 논란이 시민 논의의 장으로 수렴돼야 할 것이다. 원자력 안전 실패를 노심용융(core meltdown)이라고 하듯이 사회적 합의 실패로 인한 대중의 혼란을 ‘퍼블릭 멜트다운(public meltdown)’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뜨거운 염천에 탈핵 논란이 퍼블릭 멜트다운으로 가서는 안 된다. 공론조사도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심사숙고한 시민의 인식을 알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을 공론화해 원자력에 대한 찬반은 물론 에너지 선택의 다양한 문제가 공론과정을 거쳐 전문가 중심으로 수립돼온 에너지 정책에 국민의 정제된 인식이 반영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