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런던의 은행가 ‘시티 오브 런던’. 치솟은 유리 건물들이 반짝이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대 은행의 불투명한 운영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만큼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은행을 단순화 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뉴욕에 월스트리트가 있다면 런던 금융가는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줄여서 ‘시티’라 불린다. 네덜란드의 언론인이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이곳을 파고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지구를 휩쓸고 갔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뭔가 큰 난리가 났었다는 것만 알 뿐 정작 그 진앙지인 금융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최악의 위기를 일으키고도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탐사보도였다.
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중동과 국제 문제에는 전문가지만 은행에서 돈 찾고 송금하는 것 정도가 고작인 ‘금융 무식자’였다. 이 ‘외부자’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원시 부족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2년반 동안 시티에 들어가 금융 전문용어를 연구하며 200여명의 ‘내부자들’을 접촉했다. 탄탄한 인상을 유지하고자 정장 상의를 벗지 않으면 변호사, 갈색 구두를 신은 사람들은 런던을 방문한 대륙 쪽 유럽 은행가, 거래 해결사들은 에르메스 넥타이를 좋아하지만 트레이더들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외모 분류법과 그들만의 은어부터 배워갔다.
책은 신뢰 넘치는 금융계의 이미지를 산산이 부서뜨린다. 은행가들이 완벽히 통제·관리하는 듯 보인 그 세계가 어찌나 무책임한 곳인지 러시안룰렛에 비유할 정도다. 위법만 아니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위험한 신념이 깔렸으며,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폭탄돌리기’를 계속해도 돈이 벌리는 한 제지는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이들이 눈앞의 이익만 급급해 일탈을 조장하는 시스템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를 들면 회사 출입카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보음을 듣고서야 자신이 잘렸음을 아는 폭력적인 해고 문화다. “5분 후에 문밖으로 쫓겨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시야는 5분짜리가 된다.”
저자는 이 같은 금융계를 ‘텅 빈 조종석’에 비유했다. 흔들리는 항공기에서 엔진의 화염도 보이는데 “다 해결됐다”며 확신에 차 말하는 승무원을 제치고 조종실의 문을 열어젖히니 아무도 없는 상황 말이다.
불투명한 금융가의 어둠을 걷어내 그 투명성을 기반으로 탐욕의 구조를 사회에 보탬 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은행이 너무 커서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니 책은 ‘금융의 단순화’를 제안한다. 은행들을 작은 규모로 쪼개고 지나치게 복잡한 금융 상품을 설계·운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사는지, 은행 대차대조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금융부문이 더 늦기 전에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 시스템이라는 얘기로 ‘시티’ 안팎 모두를 일깨운다. 1만7,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