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서울 신촌)에 ‘암을 잡는 명사수’로 불리는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오는 2020년 본격 가동되면 국내 최고의 암병원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겁니다. 그해 문을 여는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 일대에 조성되는 의료 클러스터는 의료진이 100여개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 등과 직접 소통하며 제품 개발과 임상시험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며 윈윈하는 생태계로 자리 잡을 겁니다.”
윤도흠(사진)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연세의료원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의료원의 미래에 큰 획을 그을 만한 굵직한 프로젝트를 쏟아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지부진하던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과 중국 칭다오세브란스병원 신설, 중입자치료기 도입, 인공지능(AI)·의료빅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을 아우르는 ‘유비쿼터스 세브란스 3.0’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연세대 의대·치대·간호대·보건대학원과 3개 세브란스병원(신촌·강남·용인)을 총괄하는 그의 추진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용인시의 적극적인 의료 클러스터(의료복합첨단산업단지) 구축 노력, 4차 산업혁명 물결에 따른 비용절감 요소들은 윤활유 역할을 했다. 이런 추진계획들이 실질적인 열매를 맺는 2020년은 연세의료원의 역사에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2,800억~3,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755병상 규모의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이 문을 열면 연세의료원 산하 3개 병원이 4,000여 병상으로 확 커진다. 단일 운영주체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병원 덩치만 커지는 게 아니다. 윤 의료원장은 “용인연세의료클러스터는 병원 부지를 포함해 약 21만㎡(6만3,000평) 규모로 공간이 넓고 주변에는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며 “기업 측에 입주 제안을 하고 있는데 클러스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용인시도 적극적이라 연구소를 중심으로 100여개 기업을 유치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의료는 노동집약적인데다 그동안 집적도가 낮아 부가가치 창출이나 국가 성장 기여도 측면에서 미흡했다”며 “제약·바이오·의료기기 등 연관 산업과 협업하면 상당한 시너지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인연세의료클러스터는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이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대학병원이 없는 충북오송, 경기판교바이오클러스터 등과 차별화된다.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선 용인시 입장에서도 그동안 대학병원급 3차 의료기관이 없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덜 수 있다.
일본·유럽 등 전 세계에 10대만 운영되는 히타치의 첨단 암 치료장비인 중입자치료기도 2020년 본격 가동된다. 난치성전립선암·췌장암·폐암 환자 등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윤 원장은 “중입자치료기는 구매 가격에다 유지관리비·건축비 등을 합쳐 총 2,000억원이 드는 대형 프로젝트여서 의사 결정을 하면서도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암병원 설립이 세브란스병원의 평판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듯이 중입자치료기도 국내 최고의 암병원으로 발돋움하는 데 꼭 필요한 장비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중입자치료기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탄소이온중입자(초고속탄소선)를 암조직에 투사해 암세포의 DNA를 파괴한다. 국립암센터·삼성서울병원에서 도입한 양성자치료기에 비해 방사선량과 함께 파괴되는 암조직 주변 정상조직 면적이나 치료횟수·기간 등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반면 암세포 사멸률은 3배에 달한다. 치료 대상 암환자도 양성자치료기가 100명 중 14명이라면 중입자치료기는 100명 중 17~20명 선으로 더 많다.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 발표자료에 따르면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 환자에게 수술 전 중입자 치료를 했더니 20% 이하였던 5년 생존율이 53%까지 2배 이상 향상됐다.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에게 항암제와 중입자 치료를 병행했더니 10%를 밑돌던 2년 생존율이 66%까지 높아졌다.
해외 진출도 눈길을 끈다. 중국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이 2020년 완공돼 이듬해 문을 열 예정이다. 중국 신화진그룹과 5대5 비율로 합작해 15만㎡ 부지에 들어서는 이 병원은 1,000병상 규모다. 연세의료원은 세브란스 브랜드와 의료정보시스템, 운영 노하우, 의료인력 교육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배당금과 함께 매출의 일부를 받는다.
윤 원장은 “쾌적한 세브란스병원에 반한 신화진그룹 회장이 ‘칭다오판 세브란스병원’을 지어 중국 인민에게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2020년 완공되면 장비 반입과 시운전을 거쳐 이듬해 하반기 본격 운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인 의사의 인건비가 중국인보다 비싸고 주택·자녀 외국인학교 학비 등 부대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1개 과마다 시니어·주니어급 의사를 1명씩 파견하고 중국인 의료인력을 국내에서 3개월~1년간 교육해 서비스 질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용인과 중국 칭다오에 새 병원을 가동하려면 충분한 의료인력 조달과 운용 문제가 간단치 않다. 윤 원장은 “지금은 의료원 산하 병원 간에 각각의 서버를 활용해 다른 병원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띄워 보려면 3~4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클라우드서버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인공지능(AI), 통합 이미징센터 등을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인건비 부담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와 세브란스병원은 영상의학과 교수 30여명을 포함해 50여명의 임상의사가 있다. 세브란스병원에 통합 이미징센터를 만들면 용인·칭다오병원 환자의 의료영상 중 상당량을 소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진단검사의학과·병리과 업무도 상당 부분 집중화·중앙화해 운영할 수 있다.
다빈치 로봇수술 교육에 치중했던 로봇수술교육센터도 ‘아시아로보틱허브’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개발 중인 수술로봇을 테스트하고 의료진에게 로봇수술법을 교육하면서 의료용 로봇 개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윤 원장은 “미국·유럽의 수술로봇 기업들이 협업을 제안해오고 있다”며 “단일병원 기준으로 세계 1위의 로봇수술 실적을 가진 세브란스병원과 로봇에 관심이 많은 연세대 공대 교수들이 지역적으로 인접한 우리만의 장점을 살려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자신했다.
수술로봇 시장은 그동안 미국 기업 인튜이티브서지컬이 ‘다빈치’ 브랜드로 독점해왔지만 미국·유럽·우리나라 기업들이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구글과 존슨앤존슨의 척추·관절 수술로봇, 우리 미래컴퍼니가 다빈치를 벤치마킹해 국산화한 ‘레보아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56년 서울 △1974년 대광고 졸업 △1980년 연세대 의학과 학사 △1982년 연세대 대학원 의학과 석사 △1991년 동 대학원 의학과 박사 △1998~2002년 바른척추연구회장 △2004~2007년 대한신경손상학회 총무 △2007~2009년 아시아태평양경추학회장 △2007~2010년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 주임교수 △2010~2014년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진료부원장 △2011~2012년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장 △2014~2016년 7월 대한병원협회 학술위원장, 국제의료협회 부회장, 서울시병원협회 부회장 △2014년 8월~2016년 7월 세브란스병원장 △2016년 8월~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연세사회복지재단 대표, 해바라기아동센터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서울특별시의사회 고문,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이사 △2017년 5월 JW 중외박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