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회원국대비한국의자살률
이는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도 정부 차원의 세밀한 대책만 마련된다면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물론 세대를 막론한 우리 사회의 집단 우울증은 경쟁 위주의 학교 교육, 청년 실업난, 주거난, 노후 불안과 노인층 빈곤, 빈부 격차 등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수 없다”는 사회적 분노와 무기력감을 해소하는 작업이 필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 해결은 장기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비해 우울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이나 조기 치료 등 정부와 지역사회의 대책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울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20대 청년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에 걸쳐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약 64만 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대비 4만 명 가량 급증한 수치다.
증가추세인한국우울증환자수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세대는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년들이다. 지난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20대는 약 6만 4,000명에 이른다. 지난 2014년(4만 9,000명)에 비해 2년 만에 22%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우울증 환자가 4% 늘어난 것과 비춰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주된 원인은 취업난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도태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혜영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실장은 “우울감을 느끼며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며 “취업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은 50대 중년 남성들에게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다. 우울증을 진단받은 환자 수로만 보면 가장 많은 연령층이 50대다. 이는 50대 남성들이 대체로 술 이외에는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책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년 퇴직 이후 가족 부양의 역할은 줄어든 반면 가족과의 마찰이 잦아진 게 우울증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병철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성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단체 회식 등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향이 있다”며 “단체 문화에서 벗어나 집에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우울함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노인들의 상황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자살률은 10년 넘게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WHO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노인 인구 10만 명당 116.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으로 내원하는 만 60세 이상 환자의 수도 2012년(23만4,696명)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28만 명을 기록했다.
노년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복지 체계가 완비되지 않은 가운데 제대로 된 노후준비가 미비했던 탓이다. 이상영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인 자살의 주된 원인은 소득이 줄어들고 혼자 사는 노년층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높은 자살률이 우리나라 전체의 자살률을 견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는 20대 청년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이미지투데이.
◇갈 길 먼 정신건강 보호체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살 사망자 10명 가운데 9명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우울증은 환자 개인 차원을 넘어 분노조절장애 등을 거쳐 극단적인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은 2012년 기준으로 연간 8조3,000억원으로 추산됐다.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릴 정도로 흔한 정신 질환이다. 조기에 치료하면 완치율도 높다. 하지만 OECD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 기준으로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았지만 하루 항우울제 소비량은 2번째로 낮았다.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에다 정부의 관련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한 탓에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15년 기준 보건복지부의 정신보건사업 지출액은 전체 보건예산의 2.2%에 불과했다. 그보다 4년 전인 2011년 프랑스의 관련 비중이 12.91%인 데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인력도 부족하다. 복지부 내에서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전체 인력이 9명에 불과할 정도다. 사실상 국민들의 우울증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20대의 경우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20대 청년 대부분은 사회 초년생이거나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원은수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용돈이나 아르바이트에 의존하는 젊은 환자들은 치료 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다”며 “40분 정도 진행되는 심층 상담은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개인적 거부감이 걸림돌이다. 조기 치료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50대 중년을 위해 정신건강진료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용률은 저조한 상태다. 그나마 이용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김선미 서울시 보건정책과 주무관은 “정신 질환을 둘러싼 편견 때문에 지난해 정책 시행 후 1년간 이용자가 불과 200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용자 10명 중 7명 정도가 여성일 만큼 중년 남성들의 이용이 저조하다”고 밝혔다.
또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 중 정신질환으로 전문가와 상담을 한 사람은 불과 9.6%였다. 선진국인 미국(43.1%·2015년)과 캐나다(46.5%·2014년)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정신 질환을 비하하고 꺼리는 전통적 시각 때문에 정신과에 가지 못하는 현상이 우울증을 키워온 원인 중 하나”라며 “정신 질환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상언 인턴기자 sangun.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