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 바로 뒤엔 최혜진이 '반짝'

US 여자오픈 준우승 최혜진
9언더 맹타… 아마추어 최소타
朴과 엎치락뒤치락 대격전
LPGA 차세대 퀸 탄생 예고
내달 프로 전향에 잇단 '러브콜'

7번홀에서 버디 퍼트 성공한 최혜진. /베드민스터=AP연합뉴스
“우승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역사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미국 골프전문 매체 골프월드는 대기록 문턱에서 아쉽게 돌아선 최혜진(18·학산여고3)의 당찬 활약을 칭찬했다. AP통신 등 외신들도 단독 2위에 오른 한국의 10대 소녀를 우승자 박성현(24·KEB하나은행)과 함께 집중 조명했다.

최혜진은 1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GC(파72·6,762야드)에서 열린 제72회 US 여자오픈 4라운드에서 1타를 줄여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를 기록했다. 박성현(11언더파)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우승을 메이저 왕관으로 장식한 날, 차세대 에이스의 탄생을 예고한 무대였다.


최혜진은 이날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박성현과 나란히 공동 선두에 올랐다. 메이저대회인 US 여자오픈 72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인 동시에 두 번째 아마추어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바짝 다가선 순간이었다.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2타를 잃은 끝에 우승은 무산됐으나 대회 역사의 한 페이지는 장식했다. 9언더파 279타는 1999년 박지은의 283타를 4타나 줄인 US 여자오픈의 아마추어 최소타 기록이다. 아마추어의 준우승은 1998년 연장전에서 박세리에게 패한 제니 추아시리폰(태국) 이후 19년 만이자 역대 네 번째다.

여자골프 사상 최대 규모인 총상금 500만달러(우승상금 90만달러)가 걸린 이번 대회에서 아마추어 신분인 최혜진은 54만달러(약 6억900만원)의 2위 상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놓친 상금은 최혜진이 예약한 ‘돈방석’에 비하면 푼돈이나 다름없다.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과시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1999년 8월23일 생인 최혜진은 다음달 생일이면 만 18세가 돼 프로 전향을 할 수가 있다. 프로 전향은 스폰서 계약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정확도를 겸비한 260야드의 장타와 큰 무대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강심장을 지닌 그는 ‘대어’의 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된다. 골프선수 전문 에이전트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프로 전향을 앞둔 최혜진 영입을 위한 ‘러브콜’이 줄을 잇고 있다. 웬만한 대기업이 대부분 관심을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박성현이 미국 무대로 진출하면서 KEB하나은행과 맺은 규모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 나온다. 박성현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과거 연간 20억원을 받은 박세리(은퇴)에 근접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혜진의 위업은 ‘깜짝 돌풍’이 아니다. 중3 때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태극마크를 유지해왔다. 호심배와 송암배 등 국내 주요 대회는 물론 세계아마추어선수권 우승을 휩쓸며 아마추어 세계랭킹 2위(1위는 아일랜드 라오나 마과이어)에 올라 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도 목에 건 그는 초청을 받아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KPGA) 투어 대회에서도 프로 언니들을 긴장시켰다. 2015년과 2016년 롯데마트 여자오픈 4위에 올랐고 올해는 E1 채리티오픈 준우승, 한국여자오픈 4위에 이어 이달 2일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오픈 우승으로 주가를 올렸다. 이미 내년 KLPGA 투어 전 경기 출전권을 확보한 최혜진은 귀국하는 대로 국가대표 자격을 반납하고 오는 31일 개막하는 KLPGA 투어 한화 클래식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다.

최혜진은 경기 후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대회에서 이런 성적을 거뒀다는 데 나 자신도 놀랐다”면서 “상금을 받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목표는 출전해 경쟁하는 것이었고 2위를 차지한 게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는 최혜진에 이어 세계랭킹 1위 유소연(27·메디힐)이 허미정(28·대방건설)과 함께 7언더파 공동 3위, KLPGA 투어 멤버 이정은(21·토니모리)이 6언더파 공동 5위에 오르는 등 공동 8위까지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선수들로 채워졌다. USA투데이는 “1998년 박세리부터 이어진 한국선수들의 지배체제가 올해 US 여자오픈에서도 계속됐다. 반면 미국은 상위권에 한 명(마리나 알렉스·공동 11위)만 들었다”고 보도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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