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되는 순간 군중들은 열광했으나 선주 윌리엄 패터슨은 내심 불안과 불만이 없지 않았다. 불안은 앨버트 공의 말대로 첨단 기술 때문. 불만은 건조비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 탓이다. 그레이트 브리튼호의 애초 설계는 목조 외륜 범선. 1837년 진수돼 이듬해부터 대서양 횡단 항로에서 정기 운행에 들어간 그레이트 웨스턴(SS Great Western)호의 확대판 자매선으로 설계됐다. 증기 외륜을 장착한 3,000t급 목재 범선으로 건조할 계획이 도중에 철제 스크루로 바뀌었다. 날이 갈수록 하락하는 철재 가격과 반대로 목재 가격이 크게 오른데다 그레이트 웨스턴호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였다.
성공작이라던 그레이트 웨스턴호의 한계는 공간 효율성. 연료와 동력 기관이 필요 없는 범선에 비해 증기 외륜선은 공간이 좁았다. 선내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엔진과 보일러, 외륜 장치 등보다 스크루 추진 방식은 작았을 뿐 아니라 외형도 보기 좋았다. 혁신적 설계에 선주는 불안했어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설계자가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이었으니까. 진수식 당시 나이가 37세에 불과했으나 브루넬은 천재 엔지니어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템스 강 터널을 설계하고 시공한 부친 마르크 브루넬을 능가하는 당대 최고의 공학자가 주도한 선박 설계 변경에 특별히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당초 7만 파운드로 잡았던 건조비가 작업대 설치비 5만 3,000파운드를 제외하고도 11만 7,000파운드로 늘어났다. 그레이트 웨스턴호의 건조비보다 세 배나 높았다. 브루넬의 명성 아래 건조됐지만 브리튼호에게는 불운도 따라 붙었다. 템스 강 수위가 낮아져 진수 1년이 지나서야 대서양 정기운항에 나서고 다시 1년 뒤에는 잘못된 해도(海圖)로 인해 아일랜드 해안에 좌초됐다. 목재 선박 같으면 산산이 조각났을 상황에서 살아남은 브리튼 호가 빛을 본 노선은 골드러시로 승객이 폭증한 호주 항로. 군용선으로 차출될 때를 제외하고는 1886년까지 호주 항로에 투입돼 수많은 이민자를 실어날랐다.
배수량이 3만 2,160t에 달해 40여 년간 세계 최대 선박으로 군림하던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여객선으로는 흑자를 내지 못했으나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대서양 해저 케이블 가설선으로 활용된 것. 그레이트 이스턴호가 없었다면 대서양 케이블을 선박에 적재할 생각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브루넬의 이름은 아직도 존경의 대상이다. 지난 200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대규모 공연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영국의 산업혁명을 총지휘하는 주인공의 모델이 바로 브루넬이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프랑스는 배가 아팠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인의 아들이었으니까. 브루넬의 부친은 프랑스의 엔지니어 겸 육군 장교였으나 프랑스 혁명과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 당시에 영국으로 피신했던 전력을 갖고 있다. 프랑스가 혁명의 바람이 지나간 이후라고 브루넬 부자의 진가를 알아보고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다. 인재를 키울 수 있고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회의 경제와 문화가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영국인들은 브루넬을 ‘프랑스 튀기’, ‘반쪽 짜리 국민’으로 여길까. 영국 BBC가 2002년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묻는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브루넬은 윈스턴 처칠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공학자를 이렇게 기억하고 평가할 수 있는 영국의 환경이 부럽다. 진정 부러운 게 또 있다. 그레이트 브리튼호의 복원에 투입된 자금은 국고가 아니라 민간인들의 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레이트 브리튼호를 복원하면서 영국인들은 브루넬 뿐 아니라 전기 해머와 공작기계를 만들어낸 무명 엔지니어, 건조비 상승을 극복한 기업가의 도전 정신을 기렸다고 한다.
복원할 가치를 지닌 선박을 찾아내고 건조해 역사함대로 지정하는 것은 영국인들의 전유물일까. 배는 단순히 대양을 항해하는 수단이 아니다. 움직이는 교통수단이나 교량, 터널, 산업 기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기능과 효용, 미적 가치를 고루 갖춘 작품을 만들려는 엔지니어들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다. 오늘도 더위와 싸우며 땀 흘리는 이 땅의 기능인력과 엔지니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브루넬 같은 인재, 그레이트 브리튼호처럼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작품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