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책들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때를 문무왕 재위기인 676년으로 적고 있으나 신라 진성왕 4년(890)에 건립된 월광사 원랑선사탑비는 그보다 앞선 시기에 태종대왕, 즉 무열왕 김춘추(재위 654∼661)가 통일을 달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삼국이 아니라 삼한을 통일했다고 썼다.
사학전공자이자 일간지 문화재 기자 출신인 저자는 “신라인 대부분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한국사학계의 당연한 정설에 대해 반론한다. 신라인이 생각한 통일은 백제 혹은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을 통일한 것이며 고구려는 통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라가 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통일한 지역은 최대치로 봐도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 정도였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 같은 주장을 위해 저자는 성덕대왕 신종, 이차돈 순교비, 황룡사 9층목탑 찰주본기,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등의 유물을 비롯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신라인은 물론 고구려나 백제 유민들이 남긴 거의 모든 기록을 전수조사하다시피 분석했다. 이처럼 당대인의 인식을 통해 신라의 삼국통일을 연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르면 신라가 ‘삼한 통일’을 이뤘다는 표현은 11차례나 있는 것에 반해 ‘삼국 통일’이라는 표현은 3건에 불과했다.
동북공정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책의 주장은 다분히 도발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라가 통일한 영토는 고구려를 포함하지 않았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존재했는데 한국사 교과서는 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히며 “고구려나 백제가 망한 것도 신라의 역량이 강화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 대륙이 오랜 분열에서 벗어나 수와 당으로 통일됐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기 이전에 우리의 지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통렬한 반성을 제안하면서 말이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