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의 집과 사람]20년 넘은 신도시에 산다는 것

전쟁터 주차장·물새는 배관…재생 논의 계속 미뤄도 될까
용적률 높아 재건축 쉽지 않고
내력벽에 리모델링도 지지부진
정부·지자체·주민 머리 맞대고
노후 1기 신도시 재생 강구해야

분당신도시는 기자에게 각별한 애정이 깃든 곳이다. 신혼생활을 그곳에서 시작했고 작으나마 첫 내 집을 마련한 곳도 분당이다. 지난 5월 두 아들의 통학 문제로 전셋집을 분당으로 옮겼다. 딱 20년 만의 회귀다.

친정에서 멀어지는 집사람이나 오랜 친구들과 헤어진 아들들로서는 서운한 마음이겠지만 기자는 내심 분당이 반가웠다. 단지에서 구름다리 하나 건너면 중앙공원에 닿는데다 웬만한 편의시설은 걸어서 이용할 수 있다. 생활, 교통 등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했던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두 달을 넘기면서 슬슬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섀시 등 웬만한 내부는 모두 수리한 집이라 별 문제가 없겠다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밤이면 단지 내 주차장은 전쟁터다. 차 세울 곳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돌다가 자리를 찾으면 행운이다. 단지 앞 도로에 임시방편으로 차를 세워뒀다가 이른 아침 차를 다시 주차장으로 옮기는 주민이 상당수다.

지하주차장을 차지했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천장의 페인트 가루가 차량 지붕과 보닛을 하얗게 덮고 있고 장마를 겪고 나니 곳곳에서 물이 샌다.


급기야 며칠 전 사달이 났다. 우리 집 배관에 문제가 있어 아랫집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코니와 주방 바닥은 물론 배관이 지나는 벽까지 뜯어내야 한다는 관리사무소 직원의 설명에 내가 할 수 있는 답이라고는 “뜯어야지 뭐” 밖에…. 삼복 더위에 대규모 공사를 치르게 생겼다.

사실 애써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문제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이사 당일 인터넷 이전을 위해 출장 나왔던 인터넷 업체 직원은 거실과 안방을 수십 번이나 오가며 거의 반나절을 씨름한 끝에야 겨우 설치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분당은 같은 동 같은 라인이라도 배선이 다 달라요. 공사 당시 인부들이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제멋대로 전화 배선을 연결해 놓은 거죠. 자칫 연결 과정에서 선이 끊어지면 배선을 찾지도 못해요.”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배관·배선 등에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의미다. 노후화로 크고 작은 불편을 겪고 있는 신도시 아파트가 414개 단지 27만6,000여가구에 이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꺼번에 전례 없는 대규모 신도시 개발에 나서는 과정에서 자재·인력난을 겪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곳곳에서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 평균 200% 안팎의 높은 기존 용적률 탓에 재건축은 언감생심이다. 35층과 50층을 두고 싸우고 있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층수 제한 논란은 남의 나라 얘기다. 그나마 대안으로 추진하던 리모델링마저 제자리걸음이다.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내력벽 일부의 철거를 허용하겠다던 정부가 지난해 갑자기 이 같은 방침을 유보한 탓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충남 천안의 원도심 도시재생사업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낡고 쇠퇴한 도시를 재생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미 새로움(新)을 잃고 노후화라는 병을 앓고 있는 1기 신도시의 재생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낡은 신도시 아파트 재생은 공급 부족에 따른 서울의 집값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무주택자 뿐 아니라 노후 주택에 거주하는 기존 1주택자도 새집에 대한 중요한 수요층이기 때문이다. 해법을 찾기가 만만치는 않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하고 외면해서는 안되는 문제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부와 지자체, 주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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