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살률은 단순히 노동력 부족 차원을 넘어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신호였다. 소득이 높아지더라도 국민들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경제발전의 의미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핀란드는 1991년 정신건강서비스 대책과 정신질환 예방법을 담은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1986년 실시한 ‘국가 자살 예방 프로젝트’ 내 ‘심리부검’의 결과물이다. 유가족 면담과 유서를 포함해 수사기록, 의료 정보 등을 바탕으로 자살 원인을 알아내는 프로젝트로 투입된 전문가만 5만여 명에 달했던 큰 규모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1990년 인구 10만 명 당 30.2명이던 자살률이 2012년에는 절반 가량인 15.6명으로 급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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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의 정책과 지역 사회의 노력을 적절히 병행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적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쉬쉬’하지 않듯이, 우울증도 자연스러운 질병 중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채수미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울감이 심각한 질병으로 커지기 전에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며 “예방과 치료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으로 자살률을 낮춘 모범사례는 핀란드와 더불어 일본이 꼽힌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 일본은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토대로 내각부에 자살종합대책회의와 자살예방종합대책센터를 개설했다. 예산도 대폭 늘렸다. 2011년 약 134억엔이던 예산은 2013년 약 287억엔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의 연간 자살자 수는 7년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간 자살자 수가 2만1,764명으로 줄면서 1994년 이후 22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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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이 프로그램에 1억7,700만 파운드를 투입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담당하는 6,000명의 인력이 지역사회와 직장 곳곳에 배치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IAPT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울증 환자의 40%가 회복세를 보였고, 수료자의 17%는 직장으로 복귀했다.
캐나다 역시 우울증 문제 해결을 지역사회가 주도하도록 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자체는 환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환자군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서비스 제공 대상으로 포함했다. 치료보다 예방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캐나다의 자살률은 지난 20년간 20%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지난 2012년 한국에 방문한 수잔 오코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신보건자문관은 “한국은 가벼운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지역사회 자원이 매우 부족하다”며 “충분한 예산을 투입한다면 국민의 정신건강 양상을 바꿀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도 더 이상 우리나라의 우울증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부터라도 지자체와 중앙 정부가 함께 장기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강상경 서울대학교 보건복지학과 교수는 “정신건강대책은 정부가 주도하되 자원은 지역사회에 집중하도록 개편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와 일반 국민들의 정신 건강 증진을 포괄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제·성윤지·윤상언·조은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