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2TV ‘학교 2017’ 방송 캡처
지난 17일부터 KBS 2TV 월화드라마 ‘학교 2017’(극본 정찬미 김승원, 연출 박진석 송민엽)가 새로운 버전으로 방영을 시작했다. 1999년 첫 시리즈를 내놓은 ‘학교’는 6편의 시리즈를 거쳐 오며 가출, 단발령, 학교 폭력과 교권 추락 등 시대별로 변화하는 학교의 문제들을 현실감 있게 다뤄왔다.
이번 ‘학교 2017’은 비밀 많고 생각은 더 많은 18세 고딩들의 생기발랄 성장드라마로, 이름 대신 등급이 먼저인 학교, 학교에서 나간다고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향해 통쾌한 이단 옆차기를 그릴 것이라 전해졌다. 하지만 야심차게 1회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학교’는 통쾌한 ‘이단 옆차기’를 보여주기도 전에 시청자들로부터 ‘각종 후려차기’를 맞고 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무엇보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반응을 지배적으로 쏟아냈다. 청소년들의 우정과 사랑을 기본으로 그리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지만 상투적인 설정이 문제였다. 현태운(김정현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장면은 약 20년 전 청춘물에서나 보던 진부한 모습이다. 질풍노도 반항아와 오토바이는 요즘 시대에 더 이상 쿨하거나 흥미로운 공식이 아니다.
게다가 라은호(김세정 분)를 뒤에 태우고 ‘썸’이 형성되는 그림은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90년대 청춘물을 그대로 답습한 광경에 시청자들이 얼마만큼 설렘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하나, 갈수록 극심해지는 입시전쟁을 꼬집으려한 것도 취지는 좋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성적에 따라 급식을 배식 받고 성적 그래프를 복도에 붙인 장면, 추측한 정황만으로 교사들이 학생을 문제아 취급하고 퇴학을 강요하는 장면은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 ‘학생 인권침해’로 소송 당하기 딱 좋은 모양새다.
‘학교 2017’에서는 담임 심강명(한주완 분)과 교장 양도진(김응수 분), 국어교사 구영구(이재용 분)의 캐릭터 간극이 너무나 극심한 문제도 있다. 교장과 국어교사는 학생 라은호에게 시련을 가져다주는 갈등의 장치일 뿐이라는 느낌만 너무 든다. ‘학교’의 수많은 인물을 모두 면밀히 다룰 수야 없겠지만, 이들의 등장은 차별 받는 현실 공감보다 ‘악인을 위한 악인’ 사용법의 거북함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인물들이 황당하게 얽히는 장면들도 다수 있지만, 이 역시 유머를 상실해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웃음은커녕 손발이 오그라듦에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안일한 극본과 연출로 시청자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나마 극을 맛깔나게 살리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사진=KBS 2TV ‘학교 2017’ 방송 캡처
주연라인 김세정, 김정현, 장동윤은 각각 공부는 못 해도 마음은 발랄한 라은호, 반항적인 현태운, 엄친아 장동윤 역을 캐릭터 싱크로율 100%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김세정과 김정현의 티격태격 우정 케미, 김정현과 장동윤의 대립각은 비주얼부터 호흡까지 모두 합격점이다. 소심한 담임 심강명 역의 한주완과 걸크러쉬 스쿨폴리스 한수지 역의 한선화도 어울림이 좋다.
금도고 2학년 1반 학생들은 모범생, 문제아, 엉뚱한 애, 괴롭힘의 대상 등 다양한 군상의 설정을 공감가게 표현하고 있다. 금도고 선생들과 학부모들도 역할 설정에서는 억지스럽더라도 주문대로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걱정되는 점은, 이렇게 열연하는 배우들이 청춘스타 등용문인 ‘학교 2017’로 발판을 삼으려다 되레 흑역사를 남기지는 않을까하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드라마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김세정에게 떠넘겨지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그룹 구구단으로 데뷔한 김세정은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한 신인이다. ‘아이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혹평하기 쉬운 조건이다.
하지만 오히려 김세정은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18세 여고생의 호기롭고 발랄하며 상큼한 매력을 라은호 자체로서 완벽히 드러낸다. 캐릭터 설정인 ‘발칙한 여고생’에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다. 1회에서 대학생인 종근(강민혁 분)과 연애를 꿈꿀 때는 다소 과장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2회부터 무대를 제대로 찾은 듯했다. 특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퇴학 위기를 맞자 “내가 안 했어. 이딴 학교 때려 치면 되잖아!”라며 속상함을 쏟아내는 극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들을 몰입케 했다.
뭐든지 잘해 ‘갓세정’으로 불리는 김세정은 이번 연기에서 아직 세상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18세 학생을 마음껏 표현해내고 있다. ‘신인의 패기’라는 말이 맞게, 오히려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가 생기 있고 실감나게 다가온다. 활어회 같이 팔딱팔딱 뛰는 연기가 그 맛을 잘 살리고 있다.
당분간은 시청자들이 ‘김세정’의 연기를 보기위해 ‘학교 2017’로 채널을 돌리는 흥미로운 양상이 펼쳐지겠다. 초반의 혹평을 계기 삼아 제작진이 큰 그림의 연출에서 빠른 개선을 꾀하길 바랄 뿐이다. 애꿎은 배우들만 희생양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