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진단]민간 들러리 세우고 官주도 하겠다는 4차산업혁명위

민관 '동수'로는 민간 목소리 못내…또 하나의 '시어머니' 될 판

오는 8월 출범하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미래창조과학부(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개명)안대로라면 관료가 민간을 들러리로 세울 우려가 있는데다 부처이기주의를 뛰어넘어 조율·의결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미국·중국·독일·일본 등에 비해 4차 산업혁명 대열에서 밀리는 상황을 타개하고 고용·복지 등 사회·경제 구조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취지를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가 조만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보고에 앞서 23일 비공개로 가진 4차산업혁명위 기능과 조직편제 논의에서 민간과 위원회의 역할 강화 목소리가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당장 9월 말 수립되는 ‘범부처 4차산업혁명 대응 추진계획’부터 민간의 창의성과 에너지가 얼마나 반영될지 관심이다.

‘미래부案’대로면 민간 위원장 권한·리더십 발휘 어려워

민간 비중 1.5배로 늘리고 ‘분과위 → 위원회’ 체제 효과적

심의-조정서 나아가 의결기구 돼야 부처이견 조율 기능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미방위 수석전문위원은 24일 기자와 만나 “미래부안으로는 관료주도를 벗어나 민간 창의성과 자율성을 담아내기가 매우 어렵다”며 “민간위원이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민간위원을 정부위원보다 1.5배 이상으로 하고 기반기술 확충, 산업경쟁력 제고, 신산업 육성, 혁신 촉진기반 조성을 민간이 과반수인 분과에서 협의한 뒤 위원회에서 의결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래부가 지난 21일 내놓은 ‘4차산업혁명위 설치 및 운영 규정 제정(안)’ 대통령령 입법예고에 따르면 민간 위원장과 비상임 공동부위원장(유영민 미래부 장관·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사(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위원(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자치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국무조정실장·공정거래위원장·금융위원장 외 14인 이내 민간 전문가), 지원단으로 구성된다. 필요하면 분야별 혁신위와 특별위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미래부 등 관료가 주도하는 지원단에서 안건을 준비해 민관 동수 위원회에서 다뤄 과연 민간 위원장이 벤처와 과학기술계 등의 혁신마인드를 담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래부안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밝혔던 총리급이라는 말도 빠졌다. 위원장이 4차산업혁명에 정통하고 정치력을 겸비했다고 해도 관료 틈바구니에서 뜻을 펼치기 쉽지 않다. 자칫 미래부 등 공무원들의 승진 잔치판만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출신인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범정부적 대처는 긍정적이나 부처 이견과 책임소재 조율, 부처 칸막이와 이기주의 타파를 위한 실질적 권한이 없다”며 “민간이 주도하도록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관료조직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위원회는 민간이 주도하도록 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규제혁파와 개인정보와 클라우드에 대한 비전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수석전문위원은 “실무지원단이 전담 공무원이 아닌 미래부를 중심으로 파견 또는 겸임으로 운영된다면 업무에 올인할 수 없고 승진이나 인사적체 해소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원회가 ‘국가전략 수립·점검, 과학기술 등의 기반 확보, 신산업 육성과 규제개선, 사회변화에 대응한 고용·복지·금융혁신 등을 효율적으로 심의·조정한다’고 돼 있지만 의결기구로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간사인 청와대 과기보좌관도 ICT(정보통신기술) 업무에서 배제돼 과연 위원회가 ICT와 과학기술 융합이라는 트렌드를 잘 담아낼지도 미지수다. 새정부들어 ICT는 경제수석실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이전됐다.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공동대표인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옥상옥이 안 되게 민간 애로를 담아 규제혁파에 나서야 한다”며 “기존 4차산업혁명 관련법의 통과에도 역점을 기울이고 국회 4차산업혁명 특위도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분과위→위원회 체제 전환과 민간 위원 숫자확대, 위원회 의결기구화, 민간 상임부위원장이나 지원단을 관장할 민간 상임위원 신설이 효과적이다. 실례로 미래부가 이번에 연 20조원의 국가 연구개발(R&D)사업 예산 심의·조정·평가 역할을 부여받았으나 기재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등의 권한을 쉽게 넘겨주지 않으려 해 힘겨루기 중인데 의결권 있는 기구가 조정하면 해결될 수 있다. 월 1회 이상 정례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공개 보고하는 국민보고회 명문화도 필요하다. ‘더문캠’에서 4차산업혁명 정책을 짰던 한 인사는 “지원단장은 미래부에서 맡든 민간이 맡든 1급이하라 정치권과 부처를 조율할 형편이 못돼 민간 상임부위원장이나 상임위원이 필요하다”며 “국정기획위처럼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비상임부위원장에 선임하는 등 당의 노하우를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위원들도 기업과 교수, 과학자 등 공개추천을 받아 드림팀으로 구성하고 지원단은 각 정부기관과 지자체의 우수 인력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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