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스토리]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신발은 언제나 운동화…비엔날레 성공 위해 어디든 달려가야죠"

김우중 장녀로 문화자산 물려받았지만
독립 큐레이터로 자신의 길 개척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 훈장 받기도
"광주비엔날레에 교육기능 더해
현대미술 인식 바꾸고 소통 강화"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


오늘도 운동화다. 기자회견 때도, 전시장에서도, 심지어 대표이사 취임식에도 그는 늘 운동화를 신는다. 언제 어디든 달려가야 하고 뛰어야 할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반년의 공석을 깨고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의 새 대표이사로 만장일치 선임된 김선정(52) 아트선재센터 관장이다. 뿔테 안경에 짧은 머리로 만나는 그의 첫인상은 미술계와 큐레이터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한데 그간 보여온 전시나 앞으로 펼칠 기관 운영에 대한 포부는 더욱 파격적이다.

비엔날레는 격년제 국제미술제로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대부분 지역을 거점으로 발전했다. 가장 오래된 행사로는 올해 제57회를 맞은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가 있고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와 미국 뉴욕의 휘트니비엔날레가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1995년 처음 시작해 매년 짝수 해에 열리고 홀수 해에는 ‘디자인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독보적인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고 ‘세계 5대 비엔날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미술은 어렵다고들 말씀하시는데 비엔날레는 더 난해하다고 합니다. 비엔날레가 활발한 소통과 이해가 이뤄질 수 있도록, 그리고 비엔날레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이사로 선임된 것과 동시에 업무 현장에 뛰어든 김 대표는 소통과 교육을 거듭 강조했다. 광주비엔날레가 20년 남짓한 기간에 급성장했지만 다양한 층위를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자성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5년 첫회 당시 62일의 비엔날레 기간에 총 163만명이 다녀갔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관객 수는 90만명, 61만명으로 줄었고 34만명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40만명 수준을 기록했다.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행사지만 전문가층의 열광에 비해 대중적 호응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았기에 김 대표의 어깨가 무겁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 대표는 “규모가 작은 행사지만 작가들이 시민들과 적극 협력해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전개해 정체성을 확보한 영국의 리버풀비엔날레”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교육 기능 강화로 극복해 가족 단위도 즐기게 만든 호주의 아시아태평양트리엔날레(APT)” 등을 거론하며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10년제 공공미술행사로 장기 준비의 강점이 돋보이는 독일 ‘뮌스터프로젝트’도 롤 모델로 꼽았다. 뮌스터프로젝트의 경우 대학이 기증받은 추상 조각상에 대한 부정적 지역 여론이 팽배하자 주민 교육을 목표로 시작된 공공 조각 전시로 1977년 첫회의 초창기 멤버들이 지금까지 참여해 행사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매회 새로운 기획자를 투입해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 김 대표는 “관람객과 작가들은 물론 광주 지역민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행사가 돼야 할 것”이라며 “풍성한 교육행사 외에도 광주의 구도심 공간을 이용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광주폴리’를 활성화하는 식으로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풍부한 국제전시 경험과 방대한 국내외 인맥으로 미술계에서 ‘최고의 큐레이터’로 꼽힌다. 그러나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행정력과 소통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하지만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맏딸이고 남편은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다. 발현되지 않았지만 경영인의 DNA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바로 김 대표다.

광주비엔날레가 우선 마주한 난제는 예산 문제다. 격년제로 열리는 비엔날레 총예산으로 지난해 96억원이 투입됐으며 이 가운데 국비와 시비는 각각 30억원이다. 나머지 36억원은 입장료와 재단 기금 이자, 기업체 후원 등 자체 부담으로 충당된다. 그런데 국제행사가 7차례 이상 국고 지원(10억원 이상)을 받으면 지원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몰제가 이번부터 광주비엔날레에도 적용된다. 예산이 10억원 이상 줄어들게 된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2014년 홍성담 작가가 ‘세월호’를 소재로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화를 내놓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파행 이후 일몰제 적용이 추진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지원 회복을 위해 애쓰면서 기업의 비엔날레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생각”이라며 “작가들이 광주에 영구 조각이나 설치 작품을 해 광주에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협찬을 위해 그가 직접 나선 적은 없지만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에르메스미술상’, 한진해운의 ‘양현미술상’의 자문을 맡아 기틀을 마련했고 하이트와 경방 등 유수 기업의 아트 프로젝트 컨설팅을 진행했던 저력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는 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임이다. 올 1월 박양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가 학교 복직 등의 이유로 사퇴한 후 비엔날레 수장 자리는 5개월간 공석이었다. 통상으로 보자면 올해 5월에는 예술감독이 선임돼 계획안 발표까지 이뤄졌어야 하지만 많이 늦었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을 보자면 제가 예술감독이던 2012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1인 감독 체제였는데 2년마다 새로운 사람이 와서 광주의 장소의 역사성과 연구주제를 섭렵하기에는 너무 기간이 짧다”면서 “감독보다는 비엔날레 중심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라 소위원회를 거쳐 ‘공동예술감독제’를 논의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김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녀로 모친인 정희자 여사가 설립한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직을 맡고 있다. 문화 자산을 물려받았지만 독립 큐레이터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미국 크랜브룩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뉴욕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인턴십을 통해 현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3년부터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요절한 개념미술가 박이소,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이불 등 굵직한 작가를 소개했고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 훈장인 ‘슈발리에장’도 받았다. 2004년 독립해 기획사 ‘사무소’를 운영했고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0년 SeMA 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 총감독, 2012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독일의 5년제 국제예술제인 카셀도큐멘타 기획팀원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 네트워크 및 영향력에서는 국내 최고로 꼽힌다.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 이사회 멤버로 오는 2020년까지 활동한다. 당분간 서울의 아트선재센터 일은 독립기획자 출신의 김해주 부관장에게 일임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엄마를 미술에 빼앗겼다는 푸념은 이제 그만할 나이가 된 두 아들”을 뒤로 하고 광주비엔날레에 ‘올인’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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