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스무 번째의 별 이름

이기철 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은

내 입던 옷이 깨끗해진다

멀리서 부쳐 온 봉투 안의 소식이

나팔꽃 꽃씨처럼 우편함에 떨어진다

그 소리에 계절이 활짝 넓어진다

인간이 아닌 곳에도 위대한 것이 많이 있다

사소한 삶들이 위대하지 않다고 말할 권리가 나에겐 없다


누구나 제 삶을 묶으면 몇 다발 채소로 요약된다

초록 아니면 보라로 색칠되는 생이 거기 있다

풀꽃의 한 벌 옷에 비기면 내 다섯 벌의 옷은 너무 많다

한 광주리 과일에 한 해를 담아 놓고

아름다운 사람은 햇빛을 당겨 와 마음을 다림질한다

추운 발자국을 나뭇잎으로 덮어 주지 못한 걸 후회하는 사람

파란 이파리 하나를 못 버려 옷깃에 꽂아 보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은 오늘 밤 스무 번째의 별 이름을 짓는다

나비는 꽃을 닮고, 꽃은 나비를 닮는다.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사람이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사소하지 않은 사람이다. 풀꽃 한 벌 옷에 다섯 벌 제 옷을 돌아보는 사람은 스스로 풀꽃이 되려는 사람이다. 햇빛에 다림질하는 마음을 부러워하는 이는 제 삶의 구김을 펴고자 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스무 번째의 별 이름을 짓는 걸 보는 사람은 그 별빛을 닮으려는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걸 닮는다. 오늘은 무엇을 경배할까?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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