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에 꽂힌 기금운용본부장에 긴장하는 코스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직무대리 맡은 조인식
대형주+패시브전략에 코스닥 침체 불러
비상체제 국민연금 운용 방향 전환 가능성 낮아
기관이 떠받치는 '서머랠리' 기대감 사그라들어



“큰 산 하나를 넘었더니 또 다른 큰 산이 버티고 있네요. 이번만큼은 코스닥이 기관의 수급에 기대어 오르길 바랐는데 그런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펀드매니저 A씨는 지난 25일 조인식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해외증권실장이 공석인 기금운용본부장의 직무대리를 맡게 됐다는 소식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지난해 주식운용실장으로 강면욱 전 본부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대형주 중심의 패시브 전략을 진두지휘한 조 실장이 기금운용본부의 임시 수장에 오르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전략 역시 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이 최근 상승장을 주도한 외국인의 바통을 이어받아 코스닥 서머랠리를 이끌길 바랐던 시장의 기대 역시 점차 옅어지는 분위기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강 전 본부장이 떠난 자리에 조인식 해외증권실장이 기금본부장 직무대리로 임명되면서 코스닥시장에는 실망감이 돌고 있다. 새 정부의 분위기에 국민연금의 중소형주, 특히 코스닥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번 인사로 기대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무대리이기는 하지만 기금운용본부장의 의사결정에 따라 세계 3위권인 600조원의 기금이 움직이며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조 본부장 직무대리에 코스닥시장이 실망을 하는 것은 조 본부장 직무대리가 지난해 3월 국내 주식운용실장에 임명된 후 지난달 5월 해외증권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1년 2개월간 국민연금의 ‘대형주+패시브’ 전략을 설계하고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자산운용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 벤치마크(BM) 복제율 가이드라인도 그가 실무를 맡았다. 강 전 본부장은 당시 위탁운용사들이 당초 부여한 주식운용 스타일을 벗어나 중소형주를 대거 편입한 탓에 시장의 쏠림 현상이 발생했고 그 결과 주식 투자 수익률이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당시 조 전 실장의 지휘 아래 총 8가지 위탁 유형별로 벤치마크 지수를 일정 비율 이상 담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만들어 위탁운용사에 제시했다. 하지만 복제율 가이드라인은 주식 위탁운용 차별화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코스닥과 중소형주 하락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벤치마크 복제율 상향 조정이 사실상 코스피200 지수 추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니 위탁운용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소형주와 코스닥 종목을 덜어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음식료, 제약·바이오 업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5.64%의 높은 운용 수익률을 달성한 반면 중소형주 비중이 높았던 국내 주식형펀드(공모)의 평균 수익률은 0.59%에 그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기금본부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자산배분 전략에 따라 충실히 기금을 운용하는 것”이라며 “투자 결정에 기금본부 실장 개인의 판단이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복제율 조정을 통해 ‘중소형주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일자 지난해 말 복제율을 폐지하고 운용사 평가를 장기 수익률 중심으로 바꿨지만 시장은 여전히 국민연금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 직무대리 체제로는 기존의 대형주 중심의 주식투자전략이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직접 투자 시 시가총액 1,000억원 이상, 매출 300억원 이상, 반기 하루 평균 거래대금 5억원 이상 종목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내부지침을 폐지했지만 실제로 이들 종목으로 자금은 유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코스닥시장에서 연기금의 월별 순매수를 살펴보면 지난 4월 1,714억원의 자금이 유입된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방향성을 찾아볼 수 없다. 이달 들어선 11일부터 12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의 중소형주 투자제한 지침 폐지로 코스닥시장의 경우 700여개 종목에 새롭게 투자할 길이 열리며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신임 본부장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무대리가 기존의 주식투자 전략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며 “더욱이 조 본부장 직무대리가 현재의 대형주 장세를 이끈 장본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기금이 코스닥 순매수를 갑자기 늘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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