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택시운전사의 이 말 한 마디에 덜컥 택시에 올라탄 1980년 5월의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다. 당시의 실존인물을 연기한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역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담함을 통감해 곧바로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 ‘푸른 눈의 목격자’로 탑승했다.
토마스 크레취만 /사진=쇼박스
동독 출신 토마스 크레취만은 공산주의의 통제를 피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스무 살에 유고슬라비아 등 네 개의 국경을 넘는 위험천만한 여정을 거쳐 서독으로 망명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그의 연기 인생 전반을 채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로 주목받은 후부터는 ‘U-571’, ‘피아니스트’, ‘몰락’, ‘인 에너미 핸드’, ‘작전명 발키리’ 등에서 나치 독일 병사를 연기했다. 이 밖에 ‘피아니스트’ ‘원티드’ ‘킹콩’ ‘어벤져스’로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남긴 토마스 크레취만은 독일의 ‘국민 배우’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토마스 크레취만은 1991년 막스 오퓔스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고, 2006년 ‘그림 러브 스토리’로 시체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2006년 카프리 할리우드 국제영화제 공로상, 그리고 2007년 ‘그림 러브 스토리’로 또 한 번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배우가 이번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대한민국 역사의 피로 물든 광경이다.
최근 토마스 크레취만이 영화 ‘택시운전사’와 관련한 인터뷰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낸탈 호텔 서울 파르나스에서 진행 했다.
토마스 크레취만 /사진=쇼박스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점에 끌려서 출연을 결심했나?
“나는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아주 간단하다. 대본을 읽고서 이 영화를 내가 보고 싶은지 아닌지, 캐릭터를 내가 연기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결정한다. 나는 메소드보다 직관적으로 연기하는 편이다. ‘택시운전사’ 대본을 봤을 때 내가 감정적으로 이걸 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연기를 결심했다. 내가 지금까지 나치 배역을 많이 맡았는데, 정말로 누가 농담으로 ‘나치 대위 역을 많이 맡은 배우’라 하더라. 사실 교황 등 다양한 역할도 했었다.(웃음) 스스로 한정적으로 연기하길 원치 않았다.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참여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연출로나마 막상 눈앞에 막상 펼쳐졌을 때의 느낌은?
“사실 촬영하고 작업할 때 충분히 감정을 느낄 여지는 없었다. 스턴트가 어떻게 의도대로 맞고 끌려가는지에 대해 동선을 생각해야했기 때문이다. 옥상 위에서 촬영한 것을 잘 느끼게끔, 장훈 감독이 이틀 전에 촬영한 것을 나에게 보여줬는데 감정적으로 굉장히 큰 것을 느꼈다.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사실 배우로서 내가 참여한 작품 중 감정적으로 풍부한 반응을 하기는 어렵다. 연기하면서 했던 실수들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택시운전사’를 한국 프로덕션과 한국 배경에서 촬영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장훈 감독이 잘 알 것이지만, 전반적인 촬영이 날씨에 좌우될 정도로 민감했다. 작은 도시에서 촬영한 후 다시 300km 이동해서 촬영하는 등 스케줄의 계속적인 변화가 나에게 가장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제작진이 나보다 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모든 정황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고 촬영하려 했지만, 언어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 전체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촬영한 것이 어렵기는 했다. 결국 계속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 촬영하면서 번거로운 정도였다. 그것이 개인적인 면에서 안타까웠다.”
토마스 크레취만 /사진=쇼박스
-캐릭터 표현과 케미는 어떻게 보이도록 연구했는가?
“사실 순차적으로 촬영한 것이 아니었다. 감정적인 신 등의 순서를 섞어서 촬영했다. 특별히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압축적이고 감정적인 몰입 연기가 오히려 쉬웠다. 대화가 있고 가벼운 케미스트리의 연기가 오히려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송강호, 유해진, 류준열) 점차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케미가 잘 묻어날 수 있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연기는 어떻게 다가왔나?
“송강호와는 매일 같이 연기했기 때문에 전 과정을 함께하면서 의사소통을 잘 했다. 우리는 바디랭귀지를 많이 했다. 그와 함께 연기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송강호는 ‘판타스틱’한 배우였다. 얼마나 그 가벼움과 무거운 감정 사이를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며 놀랐다. 마치 탁구 치듯이 주거니 받거니 연기할 수 있었다. 우리 둘 캐릭터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잘 표현하려 했다. 송강호와는 복잡함 없이 잘 표현됐다. 유해진은 내가 ‘지니’라고 불렀다. 우리끼리 장난도 많이 쳤다. 류준열은 스윗하고 따뜻한 배우였다. 그 밖에 다른 배우들도 나를 배려해 주고 가이드 해줘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극 중 애드리브가 생각보다 많다. 한국적인 뉘앙스에 반응을 어떻게 하려 했나?
“사실 유해진과 송강호는 애드리브를 많이 했는데, 외국인인 내가 반응하는 데는 역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나온 걸 보니 크게 반응하지 못했던 장면도 신기하게 우리들끼리의 호흡으로 잘 담겼더라.(웃음)”
토마스 크레취만 /사진=쇼박스
-국내 감독 중 알고 있거나 인상적이라고 생각한 감독은?
“지금까지 박찬욱의 많은 작품을 봤다. ‘박쥐’ ‘올드보이’ ‘아가씨’를 봤다. ‘올드보이’를 처음 보고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LA 집에서 ‘스토커’를 봤을 땐 그 색감이 너무 좋아서 TV 화면을 맞출 때 ‘스토커’ 기준으로 색상을 조정했을 정도다. 박찬욱의 작품은 전작이 하나의 ‘페인팅’(그림) 같았다. 그 밖에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매우 인상적으로 봤다. 장훈 감독은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고서 훌륭한 감독이라 생각했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