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솔로 앨범을 내는 전설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사진제공=도이체그라모폰
“이번 앨범에는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 제20번과 21번을 수록했어요. 만일 슈베르트가 이 두 개의 소나타를 작곡하지 않았더라면 슈만·베토벤·브람스 같은 작곡가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세계의 찬사를 받고 후배들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동시에 ‘완벽한 피아노 연주의 전형’으로 추앙받는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1·사진). 지난 1990년대 초 발매한 첫 솔로 앨범 이후 25년 만에 도이체그라모폰과 손잡고 솔로 레코딩 작품으로 슈베르트를 선택한 그를 최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오는 9월8일 발매되는 ‘슈베르트 소나타 D959&D960’ 음반에는 슈베르트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기 직전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No.20 A장조 D959’,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No.21 B플랫 장조 D960’을 담았다. 쇼팽과 같이 폴란드 출신인 그는 1975년 쇼팽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부터 베를린필하모닉의 사이먼 래틀까지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연주자다. 또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쇼팽에 빠져들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솔로 앨범이 25년 만에 나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를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것 또한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 그는 녹음된 음악의 한계와 음반에 대한 엄격한 기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녹음된 음악을 온전한 음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리스트·슈베르트와 쇼팽의 시대였던 19세기에는 음악가들이 연주할 때면 늘 청중이 존재했고 청중은 귀로 음악을 감상할 뿐 아니라 눈으로도 연주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음향 녹음 기기를 개발한 후 우리는 음악을 소리라는 차원에서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이 단지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실 저는 제 음반에 대해 아주 엄격한 편인데 지금까지는 제가 만족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래, 이 정도면 되겠어’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음악에 대한 완벽주의로 벌어지는 그의 독특한 행동도 화제가 되고는 한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직접 가지고 다니며 연주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해된 피아노를 조립·조율까지 손수 한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왜 이런 질문을 피아니스트들에게만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플루티스트들에게는 왜 본인의 악기를 들고 가는지 묻지 않을 테니까요. 좀 더 진지하게 답변을 하자면 제가 언제나 제 피아노를 갖고 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 탄생한 작품들을 연주하는 경우에만 갖고 갑니다. 스타인웨이는 쇼팽·슈베르트·베토벤·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죠. 당대 악기들은 지금의 스타인웨이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떤 악기로 연주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리고 조율사는 따로 두지만 탄력성과 터치감을 개선하는 조정, 균형 있는 음색을 만드는 정음 등의 작업은 제가 직접 해요.”
지메르만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과 상당히 친분이 두텁다. 조성진이 쇼팽콩쿠르에서 연주를 끝내자 “저 친구 누구지? 금메달이네”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며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그는 정경화에 대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라는 찬사를 보냈다. “정경화와의 연주는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어요. 지난 8년간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경화는 저에게 단지 음악으로 호흡을 맞춘 파트너일 뿐 아니라 저와 제 아내의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성진과 젊은 한국 아티스트들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2015년 쇼팽국제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음악에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피아니스트이며 음악가로의 커리어를 구축해가는 태도 또한 아주 책임감이 있어 높이 사고 있습니다. 사실 언젠가 조성진 같은 한국 아티스트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또 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젊은 아티스트들과 그의 스승들이 음악에 임하는 자세를 보고 크게 감명받았고 그때 어렴풋이 든 생각입니다. 한국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놀랍도록 진중합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