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해 개최한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 미팅’에서 소상공인 업체의 수제맥주를 직접 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 총수와의 회동은 파격적인 형식으로 진행됐다. 형식만큼이나 문 대통령과 총수 간 나눈 대화 역시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히 각 기업들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에 따른 중국의 무역보복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국내의 강도 높은 규제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대통령과 기업인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지면서 취임 1년 차의 문재인 정부와 재계가 공감대를 쌓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총수 일행은 행사 시작 30분 전인 오후5시30분께 상춘재 앞 뜰에 미리 도착해 문 대통령을 기다렸다. 문 대통령 대신 청와대 참모진이 일찌감치 나와 재계 총수들을 맞았다. 행사 시작 3분 전 문 대통령이 입장하자 참석자 전원은 박수로 문 대통령을 환대했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 전원과 악수를 나눈 뒤 직접 맥주 기계에서 세븐브로이가 만든 수제 맥주를 뽑아 자리로 향했다. 재계 총수들의 맥주는 장하성 정책실장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직접 기계에서 뽑아 나눠준 터였다.
문 대통령은 잔을 들고 “경제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어서 각본이나 시간제한 없이 허심탄회하게 나누자는 의미로 자리를 마련했다”며 “다들 건강하십시오”라고 건배사를 외쳤다.
이어 문 대통령이 참석한 총수들에게 기업의 애로사항을 물으면서 긴장하고 있던 총수들도 부담 없이 입을 열었다. 우선 문 대통령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에게 정몽구 회장의 건강을 물으면서도 “중국 때문에 자동차 시장에서 고전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기회를 살리고 다시 기술을 개발해 도약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도 경영 여건에 대해 물었다. 정 부회장이 “소비가 살아나고 여름이 더워지면서 연초 계획보다 훨씬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사드 여파에 대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질문에 “호텔도 조그맣게 하는데 중국 관광객이 빠지고 면세점에도 단체 관광객이 죽었다. 완화될 기미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구본준 LG 부회장이 중국 진출의 어려움을 말하자 “이 문제 해결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청와대 참모진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에게도 “미국 철강 수출 때문에 걱정이 있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에 권 회장은 “저희는 당분간 미국에 보내는 거는 포기했다”며 “중기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미국 수출 물량이 제일 많았을 텐데 괜찮으냐”고 묻자 권 회장은 “미국 셰일가스 산업에서 수요가 있어 전체적으로 수출량은 줄지 않았다. 정부와 산업부, 총리와 부총리가 잘 도와주고 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가장 큰 시간을 할애한 것은 중견기업 총수 중 유일하게 참석한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의 대화였다. 문 대통령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른다고 한다”며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아주 잘 부합하는 그런 모델 기업이기도 한데 나중에 그 노하우도 말해달라”고 치켜세웠다.
이 밖에도 문 대통령은 가장 연장자인 손경식 CJ 회장의 건강 상태를 묻기도 했고 양궁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에게 한국 양궁의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구본준 LG 부회장에게는 “별명이 피자 CEO라고 들었다”며 농담을 건넸다. 구 부회장이 임직원들에게 피자를 쏘며 소통하는 노력을 칭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에게도 “부동산 가격을 잡으면 피자를 쏘겠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호프 미팅을 끝내고 상춘재로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 건배 제의를 하면서 친밀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며 “국민경제를 다들 위하여.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하여”라고 말했다.
이어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도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준비한 모두발언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와 일자리 창출 문제 등에 대한 설명과 주요 기업의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듣겠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 시간은 당초 알려진 70분을 훌쩍 뛰어넘어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