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인사이드] 英 FCA "2021년 새 기준금리로 대체"…리보의 업보

글로벌 은행간 담합 금리조작에
ARRC·BOE 등 대안 금리 제안
英 금융감독청 4년 시한부 선고
연동 상품 300조弗 규모로 추정
변동성 커질수도 있어 주의해야
"리보, 금융지형서 지우기 어려워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 것" 분석도



“친구, 신세 많이 졌어! 언제 일 끝나고 와. 볼랭저(고급 샴페인)를 대접하지.”

지난 2006년 영국 바클레이스의 한 스와프 트레이더는 경쟁은행의 동료로부터 득의양양한 메시지를 받았다.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을 도와줘 큰 손해를 막았다며 고마움을 표하는 메시지였다. 영국과 미국 금융당국의 수사과정에서 발견된 이 메시지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로 불렸던 리보가 27일(현지시간) 4년짜리 ‘시한부 선고’를 받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됐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금융감독청(FCA) 청장은 이날 런던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시장은 리보가 무기한 유효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오는 2021년까지 새로운 기준금리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리보는 1980년대부터 영국 런던에서 은행 간 자금을 거래할 때 사용하던 금리다. 당시 국제금융의 중심지였던 런던의 위상을 발판 삼아 리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벤치마크 금리로 발돋움했다. 한때 리보에 연동된 금융상품 규모는 350조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리보의 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 은행들이 담합해 금리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수사에 착수한 미국 상품선물위원회(CFTC)와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2012년 리보가 몇몇 대형은행들에 좌지우지됐다는 증거를 확보하며 의혹의 실체를 확인했다.

결국 이 사건은 금융자본의 탐욕을 보여주는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번졌다. 미국과 영국 금융당국은 영국 바클레이스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스위스 UBS, 독일 도이체방크 등 조작에 가담했던 주요 은행들에 총 90억달러(약 10조530억원)의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했다.

이 사건으로 신뢰에 금이 간 리보의 설 자리는 점차 좁아졌다. 새로운 기준금리에 대한 논의에도 불이 붙었다. 미 정부가 지원하는 대안기준금리위원회(ARRC)는 지난달 미국 국채 담보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거래금리로 리보를 대체하자고 제안했으며 영국 중앙은행(BOE)도 4월 은행 간 파운드화 초단기 대출금리인 소니아(SONIA)를 대안 금리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27일 FCA가 리보를 대체할 금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만큼 새로운 기준금리에 대한 논의는 2021년까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시한부 선고에도 2021년까지 리보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도 300조달러가 넘는 금융상품은 리보에 위험도를 고려한 가산금리(스프레드)를 붙이는 방식으로 연동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상이 추락했음에도 여전히 리보에 위험도를 고려한 가산금리를 붙이는 방식으로 연동된 자산이 300조달러를 넘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핌코의 릭 찬 포트폴리오매니저와 제롬 슈나이더 매니징디렉터는 이날 공식 블로그에 “리보를 금융지형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복잡한 일”이라며 “영국 FCA의 지원 없이도 리보는 2021년 이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다만 다른 벤치마크 금리 사용이 늘어나며 리보의 존재감이 줄어들 수 있으며 단기금리 연동상품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하며 시장 참여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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