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용 칼럼] 정부의 돈 쓰기

한양대 금융공학부 교수
즉흥적 정책 도입 세금만 축내
지출 타당성·효과성 등 따지고
미래 바라보며 정부예산 정해야



경제학을 전공하다 보니 주위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참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마다 “경제학은 돈을 버는 것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돈을 쓰는 것에 대한 학문입니다”라고 답하면서 빠져나가고는 했다. 이는 부족한 한 경제학자의 변명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많은 경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돈이나 자원을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쓸 수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돈은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씀씀이에 일정한 제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 문제는 어떤 일정 범위 내에서 자원이나 돈을 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용돈의 범위 내에서 어디에 돈을 쓸지를 고민하고 부모들은 가계소득의 범위 내에서 지출을 결정하게 된다. 기업의 투자결정도 가용한 자금의 범위 안에서 이윤을 최대로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제약은 미래의 예상되는 수입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는 집을 사기 부족한 경우 대출을 받게 된다. 이러한 가계대출은 미래의 소득을 이용해 현재의 지출을 늘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이 사업자금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경우도 미래의 이윤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도 가계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예산제약하에 지출을 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도 국채발행을 통해 현재 가용한 수준 이상으로 지출하기도 한다.

최근에 발표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서 ‘정부의 돈 쓰기’와 재정 건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적자재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하다면 빚을 내서라도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전제조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첫째, 정책 결정에 앞서 지출의 타당성·효과성·효율성을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즉흥적으로 도입된 정책은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세금만 축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시장에 대한 엄밀한 분석 없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감만으로 빚을 내어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돈을 버는 경제주체가 아니고 돈을 쓰는 주체다. 따라서 정책수립에 있어 경제학적인 인식하에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정부 역시 돈을 무한정 쓸 수 없으며 예산에는 일정한 제약이 존재한다. 정부지출은 결국에는 현재와 미래의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다. 올해 세수를 초과하는 정부지출이 이뤄져 재정적자가 발생한다는 것은 정부가 국채라고 하는 빚을 진다는 의미이고 이는 언젠가는 다시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돈이다. 현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돈은 공짜가 아니며 나중에 우리 국민이 어쩌면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예산은 현재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세금부담을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세금을 내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1인당 세금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데 앞선 세대의 빚까지 물려주는 현실이 안타깝다.

가계나 기업은 만일 미래의 소득이나 이윤이 예상보다 저조해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는 경우 직접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을 통한 지원이 효과가 없더라도, 국가부채가 증가하더라도, 미래 세대의 부담이 증가하더라도 지금 당장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예산제약에 대한 개념도 없이 근시안적으로 지출만 늘리려는 모습이 나타나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 세대의 부담까지 감안한 예산제약의 범위 안에서 조금 더 현명하게 돈을 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