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500여명의 경제전문가를 대표하는 한국경제학회의 차기 회장인 김경수(63·사진)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엘리티즘(elitism)에서 포퓰리즘(populism)으로 가고 있는데 포퓰리즘의 성패는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하고 (시민의) 집단지성이 올바르게 발휘되는지에 달렸다”며 문재인 정부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고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 시동을 건 데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급격한 정책 변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선한 의도를 가진 정책이 되레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다.
가계부채 논란에 대해서는 “소비를 짓누르는 가계부채는 이미 폭발했다”고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는 데 15년이 걸린 일본을 예로 들며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처리할 묘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복지는 혁신기업을 더 만들고 중저소득층까지 증세에 동참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점도 역설했다. 정치인들이 “기존의 질서만 바꾸면 된다”고 단순하게 주장하기보다 국민들에게 현실을 엄정히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년부터 한국경제학회를 이끌어나갈 김 교수에게 현재 대한민국 경제가 처한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물어봤다.
/대담=이현호 경제부 차장 hhlee@sedaily.com
-‘소득주도 성장’ 정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지난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거시경제의 추이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와 투자는 줄고 정부지출과 해외투자는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고성장기에 맞춰 수출 중심의 성장을 유지해왔는데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내수가 뒷받침이 되지 않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새 정부가 국정목표로 내걸고 ‘레짐’을 바꾸려는 것이다. 대기업, 수출 중심에서 중소기업, 내수 중심으로 ‘시프트’해 착한 성장을 해보겠다는 시도다. 방향은 맞다. 저소득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데 이 사람들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착한 성장,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나.
△현재로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얼마나 큰지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면 경제주체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당초 취지보다 효과가 작거나 다른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이론이다. 현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은 우리 경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특히 성장 자체를 소득주도로 한다면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경제는 빠른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일방통행식으로 가기보다는 재계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나아가야 성공할 수 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두고 부작용을 많이 얘기한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대폭 상향해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생길 것이라고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근로자가 올해 313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근로자 1,900만명 가운데 최저임금 미만이 16%에 달하는 것이다. 미국(4.2%)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 중 24세 이하가 18%, 55세 이상이 33%다. 자영업자 가운데도 고용원이 있는 곳도 157만명에 이른다. 최저임금을 높였을 때 누군가는 혜택을 얻지만 누군가는 비용을 내야 하는 구조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시행 과정에서 상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재정 3조원을 풀어 최저임금 초과 인상분을 지원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부작용과 관련해 정부가 3조원을 풀어 임금을 보전하겠다는데 어떤 계층에게 어떻게 집행할지가 우선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정부 예산을 함부로 집행할 때는 지났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 물론 우리 경제는 앞으로 저성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부흥을 위해 누군가는 수요를 채워야 하므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돈을 푸는 것은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저성장 경우처럼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해 국가부채 비율이 200%를 넘어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간과하면 안 된다.
-재정을 더 풀어 복지를 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정책인데.
△복지 강화에는 돈을 푸는 것뿐 아니라 혁신을 추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복지는 세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혁신기업이 생겨나야 법인세가 더 걷히고 일자리가 생겨나 소득세도 더 걷힌다. 당장 우리나라도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우버 같은 새로운 교통 서비스 모델이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자리를 못 잡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현재 임금근로자의 48%에 달하는 면세자도 줄일 필요가 있다. 소득이 있으면 1원이라도 세금을 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가계부채가 소비를 억누르고 있다. 어떤 상황이라고 보는가.
△언론들은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며 조만간 터질 것처럼 얘기한다. 사실상 이미 터져서 우리 경제는 위험한 상황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GDP 대비 소비 비중으로 알 수 있다. 가계부채로 곤욕을 겪은 나라들은 소비가 줄어드는 특성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소비 비중이 끝없이 위축되며 50% 밑에서 회복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일본은 저성장기에도 소비 비중이 60% 수준을 쭉 유지했다. 소비가 왜 위축됐겠나.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계속해서 줄고 있어서다. 원인은 당연히 가계부채다. 뇌관은 금융 시스템에 해당하는 말이고 실물경제는 이미 터졌다고 보는 게 맞다.
-가계부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터진 가계부채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일본도 2006년쯤 가계의 채무재조정이 마무리됐다. 15년이 걸렸다. 빨리 해결하려고 하면 은행의 자금회수가 빨라져 소비는 더 위축될 것이다. 그나마 관리하려면 비소구(유한책임형)대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비소구대출은 최악의 상황일 때 자기 집만 날리면 나머지는 보존된다. 하지만 현재 소구대출은 쇼크가 오면 소비자가 집을 돌려주고도 집값 하락에 따른 돈도 다 책임진다. 끝까지 대출을 쥐고 갚아나가는 구조다. 앞으로 신규뿐 아니라 기존 대출도 더 높은 금리를 주더라도 비소구대출로 갈아타게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
-글로벌 통화 긴축 기조에 맞춰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 시기를 엿보고 있다.
△(한은이) 결국 금리를 올릴 것이다. 이미 한은 총재가 시장에 (인상) 신호를 줬고 소비와 부동산시장 위축 등 부작용이 있는지 열심히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변국이다. 주변국은 안전자산을 창출할 수 없고 주식 같은 위험자산만 만들 수 있다. 위험자산은 글로벌 통화정책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 금리도 그 기조를 벗어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환건전성이다. 미국 금리에 따라 오르는 국채,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한은이 통제를 못하는 금리다. 시장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를 완전히 소화하면(충분히 오를 때) 한은은 금리를 곧바로 올릴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조언을 해달라.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레짐 시프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일(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후 효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둘째, 혁신 부문을 키워내지 않으면 표를 가진 중산층은 끝없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돈 쓰는 데 신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등) 가만히 있어도 재정은 나빠진다. 흥청망청 돈 쓰는 타이밍은 지났다. /정리=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