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①]조한철이 솔직해지는 시간...“패러독스가 세상을 움직인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작 연출 황재현)로 대학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배우 조한철은 “패러독스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만큼 역설적인 관계의 조합을 담아낸 연극이 바로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다. 관객의 예상을 빗나가는 드라마 전개는 뇌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오게 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고,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 안에 놓이게 하는 연극이다. 작품은 2012년 초연 때보다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접근에 다가가고자 했다.

8월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만날 수 있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은 50대 중반의 저명한 역사학자 ‘정민’과 은퇴한 국제 분쟁 전문 기자 ‘연옥’이 매주 목요일마다 각기 다른 주제를 두고 펼치는 대화를 통해 인생을 진솔하게 논하는 작품이다.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드라마 ‘내일 그대와’, 영화 ‘특별시민’ 등에서 인상 깊은 캐릭터를 선보였던 조한철은 이번 작품에서 ‘정민’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능청스러운 연기 변신을 꾀했다. 유연한 배우 조한철은 조용한 듯 날카롭게 인간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2010년 ‘호야’ 이후 7년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다. 소감이 어떤가?

▶ 6년 동안 드라마랑 영화를 하고, 7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네요. 낯설거나 이런 건 아닌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워낙에 대학로가 익숙한데, 사실 이 동네에서 살거든요.

예전엔 늘 상 이렇게 연극 무대에 오르다가, 한동안 그런 경험을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다시 익숙해지는데 몇 주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조금 오랜만이라 되게 행복해요. 약간 어려웠던 건 체력적으로 2시간을 쉼 없이 가야 하는 점이요. 누구의 친구, 누구의 선배로 주로 나왔죠. 독립 영화 주인공도 한 적 있지만, 한 인물을 온전하게 들어가서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에서 정민이란 역할을 하게 되고, 한 인물을 다층적으로 살펴보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연극 무대에 오르지 못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특별한 이유나 고민 같은 건 없었어요. 가끔 공연 하자는 이야기가 있으면 하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문제였죠. 이번엔 스케줄이 잘 맞았고, 하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하게 됐어요. 예전에 조재현 선배님이 정민 역으로 나온 공연을 봤어요. 보면서 나중에 비슷한 나이가 되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번에 함께 출연하는 진경 배우와의 친분도 있어서 더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했어요.

배우 조한철 /사진=조은정 기자
배우 조한철, 진경 /사진=조은정 기자
=관객으로 봤을 때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 왜 좋았나

▶일단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리가 보는 대다수의 드라마, 영화에는 관계들이 정형화돼 있잖아요. 사실 대부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오히려 드라마 장르들이 일상의 관계를 재단하고 있다고 할까요. 부모와 자식은 이래야 한다. 남녀가 만나면 연인이어야 한다. 아니면 친구여야 하는데 또 그건 애매하다고 봐요. 게다가 결혼한 분들은 이성 친구가 있으면 안 된다고 보잖아요. 이렇게 보다보면 관계가 편협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오히려 드라마들가 그런 관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그렇지 않았어요.

=맞다. 부부, 연인, 친구 어느 하나로 설명하기 힘든 두 남녀가 주인공인 이번 작품은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를 보여준다.

▶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매우 이상한 관계들의 조합이잖아요. ‘그와 그녀의 목요일’ 관계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이상하잖아요. 우리 일상의 관계들을 함 보세요. 그런 범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부모는 자식에게 올인해야 한다는 식이요.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는거잖아요. 좀 더 풍성해질 수 있는 관계를, 기존에 익숙한 관계에 대한 의식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닫게 만들어요. 그 지점에서 작품이 맘에 들었어요.

경험해 보니 못한 관계랄까요. 남들이 보기에 욕먹기 좋은 관계일 수 있어요. 저런 게 허용이 될까? 의심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럴 수 있어요. 대본을 읽어보고 ‘그래. 저럴 수도 있겠다’ ‘저런 관계가 가능할 수 있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연민도 생기고 그런 지점이 재미있으면서, 배우로서도 그 지점이 끌렸어요.


=막상 배우로 무대에 서보니, 관객으로서 느꼈던 신선함이 그대로이던가?

▶재미있어요. 되게. 음. 매번 지금까지도 이런 부분이 신선하다고 느껴지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요. 반전이라면 반전이 나오잖아요. 드라마 관점으로 보면 이상한데 ‘저게 오히려 말이 되네’ 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거든요. 마지막 정민의 선택에 대해서도 드라마적인 관점으로 보면 낯설어요. 배우로선 하면서도 재미있어요. 후반 정민이 멘트를 치면 기대와 다른 선택에 실망하는 관객들의 느낌이 와요. 저 역시 그 말을 할 때 미안함이 있지만 동시에 쾌감이 있어요. 묘한 쾌감 같은 것 있어요. 익숙한 드라마 구조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여기서 사실 연옥이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니까요.

=정민이의 비겁함에 화가 나면서도 공감이 가는 기분도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정민이는 되게 비겁하고 일상에서 굉장히 이상한 짓들을 해요. 스트레이트하게 목표를 정하고 가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 친구는 익숙하면서도 비겁하고, 현실적인 것 같아요. 많은 드라마들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에 익숙한데 우리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전 ‘역설 즉 패러독스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보는데 우리 연극 역시 그런 시선이 담겨 있어 좋아요.

참 재미 있는 점은 그러면서도 작품이 건조하지 않다는 점이요. 그래서 배우가 연기 할 때 오히려 치열해도 되겠단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플롯에선 치열하게 하다보면 신파로 보일 수도 있거든요. 저희 작품은 신파로 빠지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조한철의 연극을 기다린 팬분들이 꽤 있었을 듯 하다.

▶팬덤이 있는 배우가 아니라, 오랜만에 공연하니까 좋아하는 팬분들이 몇분 계세요. 그 분들은 공연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 거들떠 보지도 않으세요. 공연 첫날부터 와서 봐주시고, 음식도 보내주시고 감사하죠.

주변에 아는 분들도 몇분 보러 오셨어요. 독설가 분들의 평이 처음엔 조금 서운하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소중해요. 대표적인 독설가요? 진경 누나요. 학교 동문이고 직접적으로 오랜 신뢰가 쌓인 사이이다보니 툭툭 이야기해요. 굉장히 좋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진경 배우에 대한 신뢰가 돈독한 것 같다. 배우로서 바라보는 배우 진경에 대해 말한다면?

▶ 굉장히 귀한 배우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딱 하나의 인간으로 설 수 있는 배우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여배우들이 누구의 여인, 누구의 아내 롤로 많이 서야 할 정도로 역할이 많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인간으로 설 수 있는 배우로 바로 떠오르는 분이세요. 사실 여배우들 중에서 ‘아! 그 배우’ 하고 바로 떠오르시는 분이 많이 없는데, 진경 배우는 그런 분들 중에 한 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소중한 배우. 영화, 드라마, 연극계 모두의 인적자산이죠.

=1998년 연극 ‘원룸’으로 데뷔해 20년째 배우로 살고 있다. 수 많은 시행착오 후 성장의 과정을 거쳤을 것 같다.

▶ 글쎄요. 제가 98년에 데뷔했으니 거의 20년 정도 됐네요. 많이 됐구나. 아 많이 됐네요.(웃음) 20년 동안 배우를 했으니, ‘성장을 해야 할텐데요’...열심히 했던 건 맞는데, ‘성장’ 그 부분은 제가 판단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확실한 건 계속 정체되는 건 경계 하고 있어요. 연기에 대한 단면도 되게 많고 맞고 틀리다란 정답은 없잖아요. 배우는 자기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특히 연극할 땐 제가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직접 찍어서 모니터링을 안 하니까요. 제가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독설가 분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어려워요. 내가 잘 맞게 하고 있는건지에 대한 의심도 들거든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연을 많이 보러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더워서 움직이기 싫으실 수도 있는데, 극장이 생각보다 시원해요. 많이 와주세요. 저희 공연 뿐 아니라 공연 쪽에 관객이 많아졌으면 해요. 저희들이 표를 팔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되게 아름다워질 것 같아요. 조금 더 예뻐질 것 같아요.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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