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푸드트럭이 줄지어 서있다. 창업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음식점업으로 몰린다. /서울경제DB
하동원(45·가명)씨는 2년 전 서울 명동 인근에 냉면집을 열었다. 가게를 열기 전 육수 공장과 면 공장 여러 곳을 두루 돌며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업체를 골랐다. 그렇게 공급받은 면을 삶고, 차가운 육수를 부어 고명을 얹으면 순식간에 냉면이 완성됐다.
직접 육수와 면을 만들지 않으니 냉면처럼 만들기 쉬운 게 없었다. 여름에 맞춰 문을 연 덕에 개업 초기에는 점심때 직장인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잘됐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른바 ‘오픈 빨(개점 초기 반짝 성업을 이르는 은어)’이 끝나자 손님은 급감했다.
평범하고 흔한 맛은 한 번 온 손님을 다시 끌어들이지 못했다. 장사 석 달째에는 불고기, 국밥 등으로 메뉴를 늘려봤지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결국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채 1년을 버티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지금 하 씨는 창고 관리를 하며 2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 있다. 그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도 모른 채 냉면집을 열었으니 실패한 게 당연했다”며 “TV 속 맛집들은 수년에 걸쳐 레시피(조리법)를 연구하고 몇 달씩 공을 들여 특제 소스를 만들던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3일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숙박 및 음식점업의 1년 생존율은 59.2%, 3년과 5년 생존율은 각각 30.3%, 17.3%로 나타났다. 음식점 100곳이 문을 열면 다음 해에는 60곳만 남고 3년 뒤에는 30곳, 5년 뒤에는 17곳만 남아있다는 뜻이다. 국내 자영업자의 생존력이 이토록 약한 데는 창업하기까지 충분한 준비와 공부가 부족한 점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스스로 학습(自習)하지 않는다는 것.
2016년 창업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준비기간은 약 10.5개월로 개인 사업자는 10.1개월, 법인사업자는 14.1개월로 나타났다. 숙박·음식점업은 8.2개월로 전체 업종 가운데 가장 짧았다.
특히 2013년 전국소상공인실태조사를 보면 전체의 60.9%는 창업준비기간이 6개월 미만이었고, 1개월 미만인 곳도 10.8%에 달했다. 퇴직금을 쏟아 붓고, 빚까지 내며 창업을 하면서 다수의 자영업자가 준비하는데 채 반년도 안되는 시간을 들이는 셈이다.
개인·법인 사업자를 비교했을 때 창업 준비기간과 폐업률은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개인사업자의 폐업률(폐업자 수/총사업자 수)은 13.6%로 법인사업자(7.4%)보다 6.2%포인트 높았다. 폐업률은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부동산·임대업 순으로 높았는데, 진입 장벽이 낮고 경쟁이 심할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실질적인 창업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막상 가게를 연 사장님들은 손님맞이부터 종업원 관리, 세금 계산 등 모든 면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이런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비용 부담을 가중시켰다. 창업 장애요인을 묻는 말에 전체 창업자 중 ‘지식, 능력, 경험의 부족’이라고 답한 비율은 23.7%였는데,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숙박 및 음식점업종’은 31.5%까지 치솟아 전체 평균보다 7.8%포인트나 높았다. 가장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 능력 부족을 호소하는 것은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공부하지 않고 준비도 짧다는 증거는 음식업, 그중에서도 한식점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IBK경제연구소가 2016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음식업은 전체 자영업(개인사업자 중 농·임·어업 등 제외) 479만여 개 가운데 9.9%인 47만4,000여개로 이 중 일반음식점 비중이 73.5%, 다시 이 가운데 한식 비중은 87.3%(30만4,000여개)로 집계됐다.
다른 사업을 하다 망했을 경우 업종 전환을 할 때도 음식점은 가장 손쉽게 고르는 대상이었다. 2016년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서 개인서비스업자의 42.7%, 제조업자의 38.4%가 업종을 바꿔 음식점을 차렸다. 음식점을 하다 폐업한 사람의 64.8%도 다시 음식점을 선택했다.
음식점 중에서 한식당은 매출액 1억원 미만인 경우가 전체의 56.8%를 차지해 영세한 점포가 많았다. 반면 일식당의 경우 1억원 이하 점포는 전체의 29.5%로 한식당의 절반 수준이다.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장은 “한식당은 준비기간도 짧고 낮은 비용으로 전문성 없이 창업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창업을 고려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자영업이 실패로 돌아온다는 교훈은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여전히 손쉬운 창업의 유혹은 계속된다. 최근 프랜차이즈업체들의 광고만 보더라도 ‘3~5일만 배우면 초보자도 바로 할 수 있습니다’(소고기 프랜차이즈 S사 소개 문구), ‘공사에 필요한 15일 정도면 가게를 바로 열 수 있습니다’(햄버거 프랜차이즈 N사 광고)처럼 사흘이면 능력을 갖추고, 보름이면 ‘짠’ 하고 내 가게가 생긴다며 창업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그러나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준비한 창업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신사업창업사관학교다. 준비된 창업을 유도해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소상공인을 육성하고자 2015년부터 운영된 신사업창업사관학교는 매년 150~200여명의 교육생을 선발해 이론 교육과 16주에 걸친 점포체험을 거치게 한다.
아직 1기생의 창업 기간이 채 2년이 안돼 생존율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졸업생의 월평균 매출액은 1,090만원으로 일반 소상공인의 월 평균치(912만원)를 20%가량 웃돈다. 서류심사와 이론교육 평가, 점포체험 등 과정마다 성과가 부진하면 탈락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이론·실습으로 무장한 졸업생들은 참신한 아이템으로 골목 상권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낸 셈이다. 사관학교출신으로 지난해 8월 충북 청주에 빵집을 낸 조남욱 안셈베이커리 대표는 “돈만 들고 무턱대고 창업했다면 실패했을 텐데, 사관학교에서 시장 조사부터 아이템 선정까지 모든 과정을 충분히 준비한 덕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준비된 소상공인을 양성할 수 있는 신사업창업사관학교 같은 정책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며 “일반인들도 충분한 준비를 거쳐 창업하되, 정보력 등 취약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조직력(협동조합 등)을 갖춰야 생존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