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가 진행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 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뇌물 공여 혐의 재판 피고인 신문에서 이 부회장은 비교적 상세히 자신의 경영관을 얘기했다. 이 부회장과 함께 일하는 삼성 고위 관계자들이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에 대해 간간이 소개한 적은 있어도 이 부회장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전한 것은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이틀간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경영과 지배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지분율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분율 몇 퍼센트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그러면서 “회사 규모가 작고 사회적으로 관심도 작은 조그마한 중소기업 같으면 창업 2·3세의 지분율이 중요하겠지만 삼성전자의 규모가 되고 삼성생명 같은 공적 요소가 큰 금융기관 같으면”이라고 부연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기업 경영환경이 과거 창업 세대와는 분명히 달라졌다고 느낀다고도 했다. 이 부회장은 “창업주나 이건희 회장 같은 거의 회사를 재창업하신 분들과 저는 (주어진 상황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면서 “창업 세대와는 다른 사회적 요구 사항이 있어 주위 여러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과의 관계 설정을 더 지혜롭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기업을 향한 다양한 사회적 시선과 요구 사항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고 느낀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부회장은 이런 부분이 “오늘 제가 여기 나와 있는 것도 그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삼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승마단 지원과 같은 회사 밖 요구에 대해 삼성이 ‘지혜롭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는 것이다. 삼성이 왜 지금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 부회장의 솔직한 생각인 셈이다.
이 부회장은 진정한 리더의 모습에 대해서도 비교적 담담하게 소신을 밝혔다.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을 이해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좋은 사람이 오게 만들고 경쟁에서 이기게끔 해야 한다”면서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경영권이라면 경영권”이라고 진술했다. “삼성전자같이 큰 회사에서 지분 몇 프로 더 가진다는 거, 삼성생명 지분율이 몇 프로 된다는 건 의미가 없다” “숫자로 지배력을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 와병 이후 그룹 내 자신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을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 와병 이후에도) 삼성전자 일을 계속 해왔지만 다른 계열사에 대한 업무 관심이나 책임감이 늘었다”면서 “삼성전자 외 계열사도 조금씩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