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박지순 교수 "경영계 馴致 대상 아냐...정부, 공정한 '노사 중재자' 역할해야"

<특별 인터뷰>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담=최수문 사회부 차장 chsm@sedaily.com
어느 한쪽에 붙게되면 대화·타협 어려워
노정동맹 끊고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을
수당·상여금 따라 연봉 큰 격차나는데도
똑같이 최저임금 위반하는 왜곡 현상 발생
정부·국회 '산입범위' 재정립 서둘러야
일자리 문제, 정규직 전환 등 안정성보다
공정성 높여 취약계층 근로조건 개선을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가 경영계를 순치(馴致)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순간 노사정의 골든 트라이앵글, 힘의 균형추는 깨지게 됩니다. 그러면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은 무너집니다. 거기에 따른 파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양손에 노사를 부여잡고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간다는 시그널(신호)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노정동맹을 끊고 노사정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합니다.”

박지순(50·사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정부가 경영계의 과거 전력에 대해 비판할 것은 냉철히 비판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비판은 비판으로 끝나야지 그 흠을 무기로 해서 경영계가 제대로 발언할 수 없도록 하거나 위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욕을 먹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며 “사용자가 한 말은 모두 부정으로 치부되고 부메랑이 돼 (경영계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은 불공정한 논의구조”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사정관계가 가장 건강한 나라는 독일과 스웨덴 등인데 이들 국가는 노사정이 ‘1대1대1’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정부는 노사 어느 한쪽이 협상 테이블에 불성실하게 임하면 당근과 채찍을 활용할 수 있는데 정부가 어느 한쪽에 붙게 되면 그 효과가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중재자가 돼야 할 정부가 마치 노정동맹을 맺은 것처럼 노동계에 편향적인 정책을 펼침으로써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힘의 기울기가 명백히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진단했다. 힘의 편중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시장이 입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교수는 “정권 초기에는 정부가 무리하게 요구하더라도 경영계가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이런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경영계가 차츰 비협조적으로 변하고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 정부는 더 무리한 정책을 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일자리 창출과 근로조건 개선 등은 점점 요원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 노동시장을 넘어 나라 전체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입장을 나타냈다. 박 교수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들의 소득 수준을 개선하겠다는 경제적 의도도 있지만 노동계와의 연대라는 정치적 함수관계도 작용했다고 언급했다. “새 정부가 공약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했었는데 그 금액은 굉장히 폭발력이 큰 제안이었습니다. 노동계는 이번 인상을 과연 정부가 약속한 대로 1만원으로 향한 로드맵을 따르는지를 비롯해 다른 공약들도 지켜갈 것인지 여부를 가늠할 시험대로 삼았습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노동계와 서민들에 집중돼 있다 보니까 정부로서는 향후 선거 등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했겠죠.”

그는 정치공학적 설명을 한 뒤 사상 최대 인상 폭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박 교수는 “과연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인상 폭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당장 노인, 여성, 미숙련 청년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 3조원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대부분 복지예산일 것”이라며 “이는 오래갈 수도 없을뿐더러 수혜자 입장에서 봐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거나 ‘조삼모사’에 불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제도와 관련해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사항으로 산입범위를 꼽았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포함되는 항목은 기본급과 고정수당까지다. 문제는 이 셈법대로라면 기본급과 고정수당 위주로 구성된 연봉 1,800만원과 기본급과 고정수당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지만 상여금·복리후생비 등의 비중이 큰 연봉 4,000만원이 똑같이 최저임금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누군가는 특별한 이익을 얻게 되고 다른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나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어떻게 설계하는 게 좋을지를 물었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을 보면 기본적으로 근로 제공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은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됩니다. 상여금, 각종 수당은 물론 심지어 숙식비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준이 명확해져야 정책 타깃도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463만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같은 방식으로 산입범위를 조정하면 추후 그 인원이 200만명대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근로자의 니즈(요구)가 무엇이고 사용자들의 불편은 또 무엇인지 보다 뚜렷하고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주제로 떠올랐다. 그는 “현 정부는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 가운데 우선은 안정성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먼저 안정성을 확보한 다음 유연성을 추구하는 투스텝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순차진행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자회사 정규직 또는 본사 무기계약직 직원 등이 된다고 해봅시다. 그들이 본사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격차를 감내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 근로자의 연봉이 1억원쯤 되는데 3,000만원 받는다고 가정하면 견딜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결국 본사 정규직 직원과 같은 처우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다 안 되면 노조를 조직할 테고 그러면 유연성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겠죠.”

박 교수는 대안으로 공정성 제고를 제시했다. “안정성보다는 우선 공정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근로자 중 일부는 일의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고임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대로 어떤 이들은 너무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은 아닌지 우선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성을 높이면 당장 취약계층에는 근로조건 개선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과보호 고비용 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유연성을 이대로 둬도 되는지 등의 논의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갈등은 ‘특정·특약 정사원(정규직)’을 만들어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우리 고용시장은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임금과 저임금 일자리 등으로 이분화돼 있다”며 “시장구조가 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보니 서로 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근무지나 업무 등을 특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특정·특약 정사원을 만들고 특약조건을 다르게 해 근로자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며 “고용형태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지나친 차별요소를 억제하면 예컨대 이사 가기 싫은 사람, 새로운 업무를 배우기 원하지 않는 사람 등은 20~30% 낮은 급여로도 일하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공공 일자리 81만개 확충’은 세금 부담 문제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늘리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얘기해야 합니다. 전체 일자리에서 공공 부문 일자리의 비중이 큰 나라들은 그만큼 조세 부담률이 높은 국가입니다. 조세를 안 늘리고 공공 부문 일자리의 비중을 키운 나라가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인데요. 지금 이 나라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우선 공공 부문 일자리를 어느 정도 늘리면 국민들이 가장 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본 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의 범위에서 합리적인 수요와 공급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노사정위원회가 여전히 일자리 정책 추진체로서의 활용 가치가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일자리위원회가 큰 디자인을 하고 고용노동부가 만들어내는 정책이 잘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이를 맡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보다는 법률상 기구인 노사정위를 협의 주체를 확대하고 결론 도출이 가능하도록 의제를 보다 구체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리모델링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

△1967년 △부산 성도고, 고려대 법학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법학 박사 △2007~2009년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대책위원회 공익위원 △2009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2010년~ 한국노동법학회 상임이사 △2011~2012년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특례업종개선위원회 위원 △2012~2013년 노사정위원회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 위원 △2013년 고용노동부 임금제도개선위원회 위원 △2015년~ 한국사회보장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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