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적어도 세계 5위권에 드는 나라다. 경제력으로는 아직 어림도 없지만 기준을 국방 안보 분야로 한정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국방 예산 규모가 크다. 세계 10위. 일반적인 경제 지표보다 순위가 높다. 국내총생산(GDP·11~12위), 국민 일 인당 소득(2%~31위) 순위보다 상위다. 보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순위는 더욱 올라간다. 해군 함정을 모두 국내 건조한 국가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소총부터 잠수함, 전투기, 미사일까지 무기 전 분야를 국산화한 나라도 미국과 러시아, 중국 정도다. 일부 무기는 시장 규모도 크다. 좀 산다는 나라치고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대부분의 성인 남자가 총을 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뿐이다. 국방비와 안보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경제신문은 이에 개별 무기체제의 특징과 현주소, 개선 방향과 세계적 흐름을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 ‘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 이야기’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는 한국군이 사용하고 국내 생산되는 무기를 위주로 매주 토요일자에 실릴 예정이다.<편집자 주>
‘때가 찼다.’. 30년. 한국군의 소총을 교환할 때 시기가 왔다. 우리 군이 1948년 창군기에 최초로 장비한 소총은 미제 M-1 소총(일본군이 남기고 간 38식·99식 보병 소총이 있었지만 일시적 편제였다). M-1 소총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분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명총의 반열에 오른 소총. 그러나 한국군에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 우선 너무 크고 무겁다. 덩치 큰 미군용으로 설계된 소총이 동양인에게는 길었다.
더욱이 한국군은 M-1 소총을 너무 오래 썼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중후반, 미국, 태국과 필리핀, 호주 등 주요 참전국 가운데 M-1 소총을 개인화기로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없는 나라 살림에 60만 명이 넘는 대군을 유지하려니 총을 마르고 닳도록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M-1 소총을 들고 월남의 정글에 나타난 한국군’은 참전국의 비웃음을 샀다. 파월 한국군이 구식 소총을 들고 놀라운 전투력을 보여준 덕분에 미군은 한국군을 다시 높게 평가하며 각종 물자를 미군과 같은 수준으로 보급했다. M-16 소총도 이때 처음 받았다.
자주국방과 무기 국산화에 관심이 지대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이 무렵 소총 국내 생산을 서둘렀다. 미국 콜트사로부터 면허생산권을 얻어 육군 조병창에서 M-16을 생산하기 시작한 게 1974년. 월남전에서 유입된 오리지널 미국제와 국내 생산형 M-16 소총은 1978년께 전방 사단에 대한 보급을 마쳤다. 미국으로부터 M-1 소총을 공여받은 뒤로부터 30년이 지나 M-16 소총으로 교체된 것이다.
한국은 미국산 M-16 소총 70만 정 면허 생산에 만족하지 않고 순수국산 소총 개발에 나섰다. 800만 명이 넘는 예비군과 유사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학도호국단에 총기를 보급하려면 국내 수요에 따라 생산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소총이 필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K-1, K-2 소총이 잇따라 선보였다. 육군 특전사가 요구한 ‘짧고 강력한 기관단총’으로 개발된 K-1이 처음 선보인 게 1980년. 이어 1984년부터는 K-2 소총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서부전선의 전방사단에 1986년 K-2 소총 보급이 완료됐다.
그리고 다시 30년이 흐른 2016년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의 육군 2개 사단에 신형 소총이 들어왔다. K-2 소총의 개머리판을 떼어내고 길이 조정이 가능한 신축형 개머리판을 달았다. 플라스틱 총몸을 알루미늄으로 바꾼 이 소총은 K2C1이라는 제식 명칭을 얻었다. 경량화라는 설계 목표를 버리고 보다 무거운 알루미늄 재질로 바꾼 것은 세계적 추세인 레일을 달기 위해서다. 새로 보급된 K2C1은 연속 사격할 때 병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열이 전달된다는 결점이 발견돼 생산 중단 소동을 벌였다. 검사 결과 전방 손잡이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결점을 개선해 양산과 보급 재개 과정을 밟고 있다. 전방 부대의 소총이 바뀌는 데 또다시 30년이 걸린 셈이다.
여기까지는 국산 개인화기는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군으로부터 생산 요구가 줄어들었어도 권총과 기관총, 분대 지원용 경기관총 등 다양한 다른 국산 화기의 생산도 추진돼 국내 연구진이나 총기 제작사는 최소한의 물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구도에 두 가지 방향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첫째는 복수 사업자 운용. 지금까지 소총 생산과 납품을 맡아온 S&T 모티브(구 육군 조병창·대우정밀)의 독점체제가 지난해 말 깨졌다. 해외 총기 메이커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각종 소구경 화기를 수출해온 다산기공이 방산업체로 신규지정돼 국내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약 1만 8,000여 정에 달하는 한국군 특수부대의 기본화기가 오는 2020년부터 외국산으로 전면 교체될 예정이라는 점. 벨기에 FN 사의 SCAR 자동소총과 독일 HK 사가 미국 M-4 단축형 소총을 전면 재설계한 HK-416 소총이 유력한 대상이다. 외국산 소총이 대량 보급된다면 1974년 이후 처음이다. 도입 시기가 2020년이라면 M-16 소총 면허 생산 이후 46년 만에 외국산 소총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셈이다. 다음 시리즈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46년 만에 재개될 외국산 소총 수입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