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아메리카”··경기침체·치안부재·정치 불확실성 ‘3중고’

브라질 테메르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검찰 기소
재판 의회부결 됐지만 리더십에 치명타
베네수엘라는 제헌의회 강행 반대 시위에 ‘120명 사망’
반대 시위자에 “징역 5~10년 내릴 것” 공포정치 부활
‘마피아의 나라’ 멕시코는 곳곳에 ‘치안 구멍’ 뚫려
6월 발생한 살인사건 2,234건··“사상 최대”
중세시대 문법 적용되는 ‘남아메리카의 위기’

남아메리카 대륙이 위기다. 가뜩이나 저유가로 인해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연일 정치인들이 부정부패와 연루돼 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와 현지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곳곳에서 정권 교체를 바라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지만 정치인들에겐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 ‘삼바의 나라’ 브라질은 사상 초유의 3연속 대통령 교체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친정부와 반정부로 국론이 분열돼 연일 ‘유혈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멕시코에선 하루가 멀다고 총격전이 빗발치고 살인 건수는 2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치안에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기원전 수천년 전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건설해 대륙을 호령하던 고대인의 후예로서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문제아 3국’로 급부상하고 있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멕시코 사회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브라질리아=AFP연합뉴스


브라질의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

테메르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며 지난 6월 연방대법원에 기소됐다. 테메르 대통령은 지난 3월 세계 최대 육류가공 업체인 JBS의 조에슬레이 바치스타 대표를 집무실에서 만났을 당시 세금감면과 대출 혜택을 제공하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했던 것이 드러나 탄핵 위기에 내몰려왔다. 그는 JBS로부터 받으려면 뇌물은 15만2,000달러(1억7,000만원)에 달했고 추가로 향후 9개월간 1,150만 달러(130억 원)를 더 받으려고 조율했다는 게 연방대법원의 기소 내용이다. 만일 그가 탄핵될 경우 브라질 국민들은 전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이어 2회 연속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방하원은 궁지에 몰린 테메르 대통령의 구세주 역할을 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연방하원은 전날 열린 전체회의에서 테메르 대통령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재판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안건을 표결에 부쳐 찬성 227표, 반대 263표로 부결시킨 것. 테메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성립하려면 전체회의 표결에서 재적 의원 513명 가운데 3분의 2인 342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지만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재판 회부안이 의회에서 가결됐다면 그는 180일간 직무가 정지돼 사법 처리를 받을 처지에 놓여 있었다. 연방하원의 거부 표결로 가까스로 재판을 면하게 된 테메르 대통령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다. 그는 성명을 통해 “1년 5개월 정도 남은 임기 동안 필요한 개혁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메르 대통령이 직무수행은 정의구현을 바라는 민심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반발은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현지 여론조사기관 이보페가 시행한 설문에서 ‘대통령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응답은 81%에 달했고 테메르에 대한 지지율도 5%에 불과했다. 이는 2015년 호셰프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직면했을 당시 지지율인 9%보다 낮은 수준이다.

브라질 경제는 최악의 국면이다. 2015년 -3.8%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6%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사상 최악의 침체 국면이 이어졌다. 브라질 경제가 2년 연속 마이너스 3%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1948년 이래 처음이다. 치안도 매우 불안하다. 브라질 국립통계원에 따르면 리우데자네이루 주(州)의 치안 상황은 2009년 이후 8년 만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리우 주에서 발생한 각종 폭력사건 사망자는 3,457명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09년 상반기의 3,893명 이후 가장 많은 것이며, 지난해 상반기(3,006명)와 비교하면 15% 증가한 것이다. 주 정부는 38개 빈민가에 경찰평화유지대(UPP)라는 치안시설을 설치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하고 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올해 리우 시 일대에서는 경찰관 91명이 범죄조직원들의 총격으로 숨졌고 특히 비번 상태에서 습격을 당하는 경찰관이 늘고 있어서 보복공격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다.

브라질은 부패고기 생산국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브라질 연방경찰은 지난 3월 30여 개 육가공업체의 공장과 관련 시설 190여 곳에 대한 기습 단속을 벌여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를 시중에 판매해온 사실을 적발했고 적발된 업체 가운데는 테메르 대통령의 부패의혹과 연루된 쇠고기 수출회사 JBS와 닭고기 수출회사 BRF도 포함됐다. 브라질 농업부가 업체 21곳에서 생산된 제품 가운데 302개 샘플을 조사한 결과 2개 업체의 샘플 8개에서 박테리아가 검출된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안겼다.

니콜라스 마두로(오른쪽) 베네수엘라 대통령/카라카스=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반정부 시위군 간에 충돌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야권과 반정부 시위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헌법개정을 위한 제헌의원 투표를 결국 강행했고 지난 4월부터 집계된 반정부 시위 사망자수는 120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경제파탄을 책임져야 할 마두로 정부가 철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절차적 정당성의 부재, 조작 의혹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제헌의원 545명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로 6,120명이 출마했지만 출마자 가운데 야권 인사는 한 명도 없었다. 마두로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비단길을 깔아준 셈이다. 제헌의회는 기본 업무인 헌법 개정은 물론 기존 의회와 정부기관을 해산하거나 관료들을 해임하는 등의 막강한 권한을 가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마두로 정권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제헌의회 선거에 반대하는 시위나 집회를 금지하는 한편 “5~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 등 공포정치를 강화를 위해 쐐기를 박았다.

투표율 조작의혹 역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베네수엘라에 투표 시스템을 제공한 선거기술업체 ‘스마트매틱’는 이번 제헌의회 선거 투표자 수가 자사의 집계치와 100만 표 이상 차이 난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야권 역시 투표자 수는 작게는 200만명에서 많아 봐야 300만명이 참여했다고 밝힌 반면 정부 측은 808만9,320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41.53%에 달한다며 “놀라운 투표율”이라고 강조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양측이 내세운 숫자의 격차가 너무 크다.


국제사회의 비난은 이어지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마두로의 가짜 선거는 독재를 향한 또 다른 단계”라며 “우리는 불법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는 오는 5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나 상파울루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베네수엘라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이다. 2012년 베네수엘라가 추가로 가입했지만, 대외 무역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지난해 말부터 자격이 정지된 상태다.

3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역시 마두로 대통령이 선거조작 의혹에도 제헌의회 개원을 강행하자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회의를 마친 뒤 발표한 성명에서 “EU와 회원국들은 베네수엘라 제헌의회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우려하기 때문에 제헌의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27일(현지시간) 국경수비대에 의해 반정부 활동가가 체포되고 있다./카라카스=AFP연합뉴스
한때 석유 매장량 1위로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는 최근 몇 년간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전체 수출의 95%를 원유가 차지할 만큼 석유의존형 경제를 지속했지만 현재는 유가 폭락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빠져 있다. 베네수엘라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10%를 기록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72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최악의 국면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한 군인이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멕시코시티=신화연합뉴스


하비에르 두아르테 전 멕시코 베라크루즈 주지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과테말라시티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본국송환을 위해 호송되고 있다. 두아르테 전 주지사는 부패 혐의로 약 6개월간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지난 4월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130㎞ 떨어진 파나하첼 시에 있는 한 호텔 로비에서 체포됐다. /과테말라시티=AFP연합뉴스


멕시코에선 마약과 마피아, 총격 사건 등과 관련된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에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도심에서 해군과 마약 갱단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두목을 포함한 8명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멕시코에서 갱단이 경찰도 아닌 군대라는 공권력과 총격전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에는 정부 보조금 호송 차량과 호위 경찰들이 무장 강도들의 습격을 받아 경찰 5명과 은행 직원 2명이 사망했다. 멕시코 남부 게레로 주 아우아쿠오칭고 시 인근에서 국립 저축·금융 은행(BANSEFI) 소속 현금 운송차량이 무장 강도들의 매복 공격을 받았다. 호송 차량에는 5만5,000달러(6,150만원) 가량의 오지 지역 정부 보조금이 실려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달 미 마약 당국은 멕시코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된 포드 신차에서 277파운드가량의 마리화나를 압수했다. 포드 차에서 대량의 마리화나가 발견된 것은 최근 2주 사이 두 번째로 이에 앞서 시가로 100만달러(11억2,000만원)어치가 넘는 마리화나 400파운드가 멕시코산 포드 퓨전 차량의 트렁크에 실려 있던 스페어타이어 부품 속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다량의 시신이 발견되는 것도 예삿일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에는 미 텍사스 라레도 시와 접한 멕시코 국경도시인 누에보 라레도 시의 다리 인근의 한 가정집 앞에서 피범벅이 된 9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최근 미국 텍사스 주(州)에서 발생한 인신매매 추정 트레일러 참사 사건 사망자 역시 10명 중 7명꼴로 멕시코 국적자라고 멕시코 당국이 확인하기도 했다. 멕시코 외교부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최소 34명의 멕시코인이 참사 트레일러에 타고 있었으며 이 중 7명 숨지고 27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새벽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차로 2시간 30분 거리인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35번 도로변 월마트 주차장에 세워진 트레일러에서 시신 8구가 발견됐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2명이 추가로 숨졌다. 미 당국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참사 트레일러에 200명의 이민자가 타고 있었으며,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수가 SUV를 타고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의 치안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달 멕시코 정부가 공개한 공공치안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발생한 살인사건은 2,234건으로 전달의 2,191건을 웃돌면서 3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 5월에 이미 2011년 5월에 집계된 종전의 월간 최대 살인사건 건수(2,131건)를 경신한 데 이어 재차 최악의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당국의 살인사건 통계는 검찰이 수사 중이거나 연방 당국에 신고된 사건만 집계된 것으로 실제 살인은 훨씬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경기침체 ▲불안한 치안 ▲정치 불확실성이다. 정치인들은 경제 체질을 바꾸는 구조개혁에 나서기는커녕 개인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뒷돈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됐고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공권력은 허물어졌고 갱단과 강도가 총을 들고 민간인들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베버는 근대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폭력행사의 독점을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개인이 총칼을 들고 싸우는 중세시대의 문법이 남아메리카를 관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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