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12년형을 구형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후진술에서는 짙은 회한이 묻어났다. 삼성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거론할 때는 눈물도 쏟았다. 하지만 이는 특검의 유죄 논리를 인정하는 회한이 아니었다. 급작스럽게 삼성의 총수 역할을 맡아 ‘정도 경영’의 뜻을 채 펼쳐보지 못하고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것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었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40대 젊은 총수에게 주는 말 못할 중압감은 그의 최후진술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중압감에 저도 나름 노심초사하며 회사 일에 매진해왔다. 하지만 제가 큰 부분을 놓친 게 맞다. 저희의 성취가 커질수록 우리 국민들과 사회가 삼성에 건 기대는 더 엄격하고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고 후회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수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복잡한 심경을 내보였다. 지켜보던 방청객들은 ‘힘내세요’라고 외치다가 일부가 퇴정당했다. 일부는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구상해왔던 경영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던 부분을 아쉬워했다. 그는 “저는 평소에 제가 경영을 맡게 된다면 제대로 한번 해보자. 법과 정도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나아가서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이 돼보자는 다짐을 했다”면서 “뜻을 펴보기도 전에 법정에 먼저 서게 돼버리니 만감이 교차하고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은 재판부에 한가지만은 거듭 강조했다. 그것은 결코 사익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뭘 부탁하거나 기대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에 피해를 끼쳤다는 특검 측 논리에 대해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 우리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겠는가”라며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는다면 저는 앞으로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 이 오해만은 꼭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이 부회장에 이어 최후진술에 나선 최지성 전 부회장도 40년 삼성그룹에 몸담은 조직의 장으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 유고 이후 미래전략실장으로서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것이 최 부회장이다.
그는 지난 7월7일을 거론하며 삼성그룹에 대한 그의 짙은 애정과 후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은 최 부회장이 삼성에 입사한 지 40주년이며 삼성 반도체가 인텔을 꺾고 세계 1등이 됐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기도 하다. 최 부회장은 “그날은 후회와 반성, 뭔지 모를 서글픔으로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에 책임을 묻는다면 늙어 판단력 흐려진 저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일은 제 짧은 생각과 내가 해야 한다는 독선, 법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으로 최순실에게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특정인 이재용을 위해 한 것으로 생각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번 재판 과정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과 비전, 삼성의 경영 시스템은 비교적 소상히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부친인 이 회장 와병 이후 그룹 경영의 전면에 등장했지만 사실상 후계 수업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고리’가 돼준 것이 미래전략실장인 최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 외에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총수가 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사태로 삼성은 벼랑 끝에 섰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고 실질적인 주도권을 쥘 경우 삼성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 부회장이 삼성과 삼성을 둘러싼 외부의 민낯을 여실히 지켜본 만큼 삼성이라는 기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앞서 재판 과정에서도 지분율에 집착하지 않는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을 이해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좋은 사람이 오게 만들고 경쟁에서 이기게끔 해야 한다”면서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경영권이라면 경영권”이라고 진술했다. “삼성전자같이 큰 회사에서 지분 몇 프로 더 가진다는 것, 삼성생명 지분율이 몇 프로 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숫자로 지배력을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동영·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