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11일 자체 AI플랫폼인 ‘클로바’가 탑재된 웨이브를 국내 시장에 출시한다. 지난달 14일 일본 시장에서 먼저 선보인 후 한 달만이다. 가격은 15만원으로 일본 가격(1만5,000엔)과 큰 차이가 없으며 SK텔레콤의 누구(14만9,000원)와도 비슷한 수준이다. 네이버 측은 11일부터 네이버뮤직 1년 무제한 듣기 이용권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웨이브를 선착순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고 다음 주에는 일반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웨이브는 음성인식을 통해 간단한 대화는 물론 뉴스·날씨정보·음악추천·검색 기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웨이브 데뷔 무대인 일본에서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출시 닷새 만에 초기 준비 수량이 소진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웨이브가 국내에 상륙할 경우 일본에서의 인기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현지 1위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바탕으로 마케팅에 나섰지만, 국내의 경우 네이버의 네임밸류만으로도 충분히 파급력이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누구’를 기반으로 한 가정용 AI 시장의 영향력을 일상 생활 전반으로 확대해 국내 시장을 장악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기존 ‘누구’의 크기를 절반 이하로 줄인 이동용 AI 스피커 ‘누구 미니’를 11일 전격 선보인다. 높이 6cm, 지름 8cm에 무게는 ‘누구’의 5분의 1 수준인 219g, 충전시 4시간 정도 이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내장했다. 정가는 9만9,000원이지만 앞으로 석 달간 출시 기획가인 4만9,900원에 판매한다. SK텔레콤은 이 같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초기에 AI 플랫폼으로서 입지 구축에 힘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누구미니는 누구가 제공하는 음성인식 기능은 물론 △음악감상 △가정용 사물인터넷(IoT) △일정관리 △온라인 전자상거래 △오디오북 △금융정보 △감성 대화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며 한층 진화된 서비스를 선보인다. 박명순 SK텔레콤 AI사업본부장은 “앞으로 다양한 기기들이 누구 AI를 탑재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누구의 응용프로그램개발환경(API)을 올 연말께 개방해 ‘누구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SK텔레콤의 AI 전략은 AI 스피커 ‘에코’를 기반으로 한 아마존의 플랫폼 전략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아마존은 지난 2014년 에코를 출시한 이후 무게와 크기를 줄인 ‘에코닷’을 2년 뒤 선보였으며 지난 5월에는 쇼핑기능에 최적화된 터치스크린 기반의 ‘에코쇼’를 내놓았다.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을 장악한 구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005930)나 애플과 달리 마땅한 플랫폼이 없던 아마존의 승부수인 셈이다. 에코는 이후 AI 생태계의 핵심축으로 자리를 잡으며 ‘AI의 선두주자=아마존’이라는 등식을 가져왔다.
네이버 역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업체의 기기(스마트폰이나 PC)에 의존해야 했지만 자체 AI 스피커가 있으면 디바이스와 플랫폼 영역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11번가’라는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티맵’이라는 온라인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보유한 만큼 전자상거래 시장은 물론 자율주행차 생태계까지 확장할 수 있는 무기를 확보했다는 평이다. 이런 가운데 ICT 기업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KT의 경우 국내 1위 IPTV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체 AI 스피커 ‘기가지니’의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LG유플러스(032640)와 카카오 또한 이르면 올 3·4분기 내에 AI 스피커를 내놓을 예정이다. 특히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뱅크’를 통해 보여준 경쟁력을 AI 스피커에서도 구현해 낸다면 AI 시장 패권 장악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AI 분야의 한 전문가는 “아마존·구글·애플 등은 한국어 음성인식을 위한 데이터가 많지 않아 국내 AI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우리 기업 중심으로 펼쳐질 수 밖에 없다”며 “각사의 강점을 잘 살리면서 기술의 진화를 일구면서도 이용자의 생활 속에 스며드는 진정한 AI 서비스로 발전시키는지가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철민·양사록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