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 금융투자로 막아야] 1인1株 운동...거래세 폐지...日 공모펀드 시장 1,000조원 넘어

<1> 저축서 투자로 '노후 공포' 극복하는 일본인들
"노후 파산은 국가적 리스크"
고이즈미 시절부터 정부 대책
투자의날 만들어 대대적 캠페인
지난해 개인 주주 1,854만명
고령자 자산 후견인제 도입에
증권사는 증여·상속세 컨설팅
노인→자녀 계좌이전도 활성화

#50대 고토 아츠코의 일상은 평온했다. 부부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자녀들은 대학을 마쳤다. 노후 자금은 1,200만엔(약 1억2,219만원)의 예금과 은퇴 후 받을 연금. 하지만 딸 사야카의 결혼과 시아버지의 장례식에 이어 남편과 본인의 실직으로 갑자기 빈곤의 문턱으로 몰렸다. 고정지출을 줄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던 그는 결국 친구인 사츠키가 벌이는 연금 사기에까지 가담한다.

평범한 50대 부부가 갑작스럽게 노후 파산의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다룬 일본 소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의 줄거리다. 지난 4일 도쿄에서 만난 저자 가키야 미우는 “일본은 잘 갖춰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시스템에다 자가주택 보유율이 높아 노후 대비가 어렵지 않은 편으로 보였지만 아츠코처럼 자녀의 결혼·실직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는 가정이 완전히 무너진다”며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황혼이혼 증가도 빈곤율 상승의 원인”이라며 “노후 파산은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가키야 작가의 말처럼 일본의 ‘노후 파산 공포’는 현실이다. 공영방송 NHK는 2013년부터 일본 내 노후 파산 현상을 다룬 ‘노인표류사회’ 시리즈를 방영했다. NHK에 따르면 일부 지방의 경우 고령자가 있는 가구의 약 10%가 국민연금과 후생연금 등의 조부모 연금이 가구 수입의 전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손자녀가 어린 상황에서 아버지가 질병 등으로 인해 근로 능력을 잃은 경우 할아버지의 연금이 유일한 수입원인 셈이다. 일본의 국민연금은 격월로 지급되기 때문에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달에는 식빵 몇 조각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의 현주소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부터 노후 파산을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금융투자에서 대안을 찾았다. 1999년 유가증권 거래세를 폐지했다. 2001년부터는 확정형(DC)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해 대기업 근로자부터 본격적인 노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의 DC형 연금제도는 1월 대대적으로 개정돼 공무원이나 전업주부들도 가입할 수 있다. 일본은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연 1회 근로자들에 대한 연금 교육을 진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2003년에는 한시적으로 주식 배당·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20%에서 10%로 낮추고 ‘1인 1주 갖기 운동’을 시작했다.

돈을 은행에 쌓아두지 말고 금융 상품으로 불리자는 의미의 슬로건 ‘저축에서 투자로’도 등장했다. 영국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벤치마킹했다. 일본어로 ‘투자(投資·토오시)’와 발음이 비슷한 10(토오)월 4(시)일을 ‘투자의 날’로 지정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2014년에는 일본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인 ‘NISA’를 출시해 2년여 만에 대표적인 전 국민 금융상품으로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노력은 일본의 금융투자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여전히 가계자산 중 주식·펀드의 비중이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공모펀드 시장의 규모가 100조엔(약 1,018조원)을 넘어섰다. 이시쿠라 코이치 일본 증권업협회 국제·리서치 부문 최고책임자는 “2013년 1,750만명에 달하던 개인 주주의 수는 2014년 1,810만명, 지난해 1,854만명으로 늘어났다”며 “NISA 도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고령화 마케팅 전략 변화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시쿠라 최고책임자는 “증여·상속세 컨설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면서 고령 고객의 계좌가 자녀의 명의로 이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고령자의 효율적인 자산운용을 위해 자식이나 변호사에게 금융자산을 운용할 권리를 주는 후견인 제도도 도입했다. 일본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500만명에 달하던 65세 이상 치매 노인 수는 오는 2025년에는 700만명, 2050년에는 1,000만명에 달하며 이들이 2050년에 소유할 자산은 100조엔(약 1,018조원)을 넘었다.

월지급식과 배당 펀드의 인기도 고령화·저성장 시대 금융투자의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다. 김수석 삼성증권 도쿄사무소장은 “일본의 개인투자자들은 매매 차익보다는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중시해 공모펀드 순자산 상위 10개를 모두 고배당의 미국 리츠나 고배당주 펀드, 하이일드 펀드 등이 차지하고 있다”며 “달러·해외채권 등에도 분산투자하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아직 일본 가계금융자산 중 주식 투자의 비중은 8.6%(지난해 말 기준)에 그친다. 펀드의 비중도 5%에 불과하다. 한국 가계금융자산은 주식 투자가 15.7%, 펀드가 3.2%다. 양국 모두 미국(주식투자 35.4%, 펀드 10.7%)에 비하면 턱없는 규모다. 강창희 트로스턴연금요육포럼 대표는 “그나마 일본이 국민들의 노후 대비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노력하고 있다”며 “한국은 그런 고민조차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가장 집중적으로 금융 교육을 받아야 할 젊은 세대는 취업난과 저임금으로 인해 정작 투자할 소득이 거의 없다는 문제까지 겹친 상황이다. 강 대표는 “지금부터라도 빨리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주희기자 도쿄=김연하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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