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물론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대다수 역사서가 일제강점기를 수탈사 내지 독립투쟁사에 한정해 단선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이 책은 또 다른 관점, 즉 백화점과 양복·구두, 미용실 등 새로운 문물이 자리 잡는 맹아기, 또 일제의 경제수탈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시발점으로서 이 시대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독자 스스로 이 시기를 평가해보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시를 ▲국권수탈기(1875~1910년) ▲총독부의 전방위적 식민화 작업 시기(1911~1920년) ▲억압과 통제 속에 변모하고 성장하는 시기(1921~1930년) ▲민족말살정책기(1931~1940년) ▲일제 패망기(1941~1945년) 등으로 나눠 세계사와 교차시키는 서술 방식을 택하면서 시기별 주요 사건과 인물을 소개한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등 국권 강탈의 전위대장 역할을 했던 일본 통감·총독부터 이완용, 송병준, 윤덕영, 이병무 등 매국의 선봉에 선 인물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점 역시 흥미롭다. 이를 통해 저자가 노린 것은 암기가 아닌 이해다.
다원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면서 다양한 사건들이 소개되는데 특히 1931년 조선일보의 오보에서 비롯된 중국인 학살사건(완바오산 사건), 1932년 일본 상인들의 전복 헐값 매입에 저항한 제주 해녀 경찰주재소 습격 사건 등은 여느 대중 역사서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생생한 이야기들이다. 다만 이 같은 주요 사건이나 인물 소개에서 택한 서술방식이 생생하고 쉬운 문장으로 이뤄진데 반해 거시사 영역에서는 여타 역사서(특히 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딱딱한 문체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은 대중을 겨냥한 입문서 치곤 아쉽다.
저자 박영규는 1996년 3월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출간한 이후 20년 넘게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를 내면서 상아탑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좁히는 ‘대중 역사서 시대’를 열었다. 지금까지 200만 권이 팔려 나간 ‘조선왕조실록’의 인기에 힘입어 ‘고려왕조실록’ ‘고구려왕조실록’ ‘백제왕조실록’ ‘신라왕조실록’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등을 내놨고 이번 ‘일제강점실록’을 끝으로 고대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책들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 세계의 문턱을 넘어서게 해주는 책들이다. 특히나 대미를 장식한 ‘일제강점실록’은 제72주년 광복절을 코앞에 둔 지금 펼쳐 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발판 삼아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역사 지식으로 접근하고 독자들 스스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이 저자의 바람일 것이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