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의 절정을 맞은 지난 3일, 대천시의 밤은 형형색색의 조명불빛으로 화려하게 빛났다. 식당 주인들은 어항에 꽉 찬 조개를 가리키며 손님들을 유혹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30 남녀들은 모래사장 위 ‘즉석만남’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시각, 대천해수욕장지구대는 전운이 감돈다. 휴가를 맞아 피서객이 늘수록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도 쏟아지기 때문. 파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은 오후 6시부터 경찰 조끼를 입고 밤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나국주 대천해수욕장지구대 2팀장은 “보령머드축제 땐 하룻밤 새 70~80건에 달하는 신고가 접수돼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3일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지구대 경찰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동행취재했다. 기사는 현장감을 위해 1인칭 경찰 시점으로 구성했다.
◇20:00~23:00 맛집·차편·본인위치까지 ‘도와줘요, 경찰맨!’
20:00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분명히 알던 데였는데…” 70대 노인이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도움을 요청해 왔다. 수화기 너머로 “해수욕장 인근에 앉아 있는데 길을 잃었다”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주변에 건물이 뭐가 보이느냐’, ‘다시 한 번만 말해달라’며 10여분을 진땀을 뺐다.
20:50 “맛집 어딨어요? 제가 서울 와서 여기가 처음이라서요.” 화려한 숄을 두른 50대 여성이 경찰서 문을 밀고 들어 와 ‘맛집’을 찾는다. “찾는 메뉴는 별로 없지만 일단 유명한 곳”으로 알려달란다. 이런 사람 하루 걸러 꼭 있다. 얼른 “건너편 고깃집이 맛있더라, 취향대로 가시라”며 달랜 후 인근 식당으로 보냈다.
23:10 휴대폰을 분실했다며 20대 여성 2명이 찾아왔다. 조개구이집에서 식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와 보니 휴대폰이 없어졌단다. 식당의 폐쇄회로(CCTV)를 돌려보니 자신이 담배를 피고 나온 자리 근처에서 20대 남성이 서성이다 휴대폰을 주워 가는 걸 목격했다. “제 휴대폰 좀 찾아주세요, 너무 속상해요.” 울상으로 애원하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다. 머리를 긁적이며 진술서만 건네줄 뿐.
23:25 “지구대 앞 여자화장실에서 비상벨 작동, 확인 바람.” 조용하던 지구대에 무전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쏜살같이 달려가 보니 화장실 안에 있던 여성은 “잘못 눌렀다”며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실제 비상벨 오작동으로 헛걸음을 하는 경우가 하루 1~2건씩 꼭 발생한다. 함부로 누르지 말라고 유리덮개까지 씌웠건만 매일 밤마다 비상벨은 야속하게 울린다.
23: 35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신고전화가 걸려 왔다. 20대 남성이 한밤중에 바닷속으로 들어갔다는 것. 인근 여름경찰서 소속 의경들과 함께 다급하게 달려가 보니 그는 물에 젖은 발바닥을 말리며 어느새 물 밖에 나와 있었다. “잠깐 재미 삼아 들어갔다 나왔다”는 해명에 헛웃음을 하며 경찰서로 되돌아왔다.
23: 40 “미니바이크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역주행해 아이가 다칠 뻔 했다”는 행인 제보가 들어왔다. 순찰차 1대로 주변을 돌며 미니바이크 3~4대를 불러세웠다. “도로에서 역주행하면 안 된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휙 뒤돌아 바이크를 다시 탄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그들은 10분 뒤 건너편 도로에서 또 다시 역주행을 시작했다.
◇01:00~05:00 응급환자·교통사고·성범죄 제보에 ‘미아찾기’까지
02:17 근처 섬마을에서 응급환자가 생겼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 너머의 신고자는 “급히 병원에 가야 한다”며 거듭 방법을 찾아달라고 재촉한다. “해경이 환자분을 직접 태우고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안내해 신고자를 겨우 안심시켰다.
04:01 대천해수욕장 인근 시민탑 광장에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현장에 출동해 보니 차량 2대를 뒤에서 들이받은 피의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반 넘게 움푹 꺼져 있었다. 피의자는 사고 직후 보험 서류와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챙기고 사라져버렸다. 피서객 수십명이 현장에 몰려들었다. 흔치 않은 대형 사고다. 새벽 4시, 바닷바람을 맞으며 1시간여를 현장 수습에 매달렸다.
04:30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한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데리고 펜션으로 들어갔다”는 신고다. 위치는 해수욕장 인근의 M펜션. 20개가 넘는 방을 일일이 열어보는 것은 아무리 경찰이라도 영업 방해다. 같은 펜션에 묵고 있는 제보자를 설득해 의심 가는 방 호수를 알아내 현장을 급습했다. 신분증을 확인해보니 여성의 나이는 23세. 허탈하지만 이런 류의 허위제보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나온다. 허위제보에 힘만 뺄 때도 많지만 간혹 그런 신고 중 강간이나 준강간 같은 중범죄 사건도 섞여 있어 매번 긴장하고 출동할 수밖에 없다.
05:00 “유미진(가명)씨 계세요?” 때 아닌 미아 찾기에 나섰다. 함께 온 일행 중 3명이 이 시간까지 숙소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신고전화를 걸었다. 경찰차 2대를 동원해 동료경찰 3명과 유모(23)씨 일행을 찾아나섰지만 번번이 허탕이다. 아예 휴대폰 전파가 터지는 인근 S여인숙에 내려 숙소를 뒤지던 중 때마침 여인숙 방에서 나오던 유씨 일행이 놀라 쳐다본다. 해수욕장에서 만난 남성들과 합석을 해 술을 마시던 모양이었다. 유씨는 자신을 찾으러 온 경찰 4명과 경찰차 2대를 보더니 “이거 진짜 오버다”, “왜 이런 신고까지 (수색)하느냐”며 창피함에 어쩔 줄을 모른다. 동료경찰은 “여행성 범죄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친구가 걱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놀러를 가더라도 친구한테 연락은 꼭 해 줘야 한다”고 당부하고 자리를 떴다.
3일 오후6시부터 다음날 오전8시까지 대천해수욕장지구대에 접수된 신고는 20여건. 떠오르는 해에 경찰서 바깥이 조금씩 밝아질 즈음 한숨을 돌리며 쪽잠을 청했다. 깜빡이는 컴퓨터 모니터 뒤로 붉은색·파란색 글씨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내 부모·형제처럼 모시겠습니다. 대천해수욕장지구대 직원 일동.’
/글·사진(대천)=박진용·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